'부시의 낙하산' 울포위츠 애인 너무 챙기다 옷 벗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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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울포위츠(64.사진(左)) 세계은행 총재가 취임 2년 만에 불명예 퇴진한다.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여자친구 샤하 리자(52.(右))에게 승진과 보수에서 특혜를 준 게 문제됐기 때문이다. 그를 계속 감싸온 백악관의 토니 스노 대변인은 16일 "세계은행이 새 총재를 맞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ABC.CNN 등 미국 방송들도 이날 울포위츠가 자진 사임 방안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세계은행 윤리위원회가 자신에게 여자친구 승진 및 급여 인상과 관련, 잘못된 조언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뜻을 비춘 것으로 알려졌다. 물러갈 테니 체면을 조금만 세워 달라는 뜻이다.

◆ 미국식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 사례=미 국방부 부장관으로 있던 그는 2005년 3월 말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됐다. 정식 취임은 그해 6월 1일이었다. 그는 힘의 외교를 신봉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 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 대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미국 몫인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여러 회원국이 크게 반발했다. 그동안 그가 한 일로 판단할 때 적임자가 아니라는 비판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유럽의 거센 반발을 결국 누그러뜨렸고, 그는 예정대로 세계은행 총재가 됐다.

◆ 중도 하차 배경=세계은행 특별조사위원회는 14일 "그동안 조사 결과 총재의 여자친구에 대한 특혜 시비가 사실로 드러났다. 울포위츠의 리더십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리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중동 문제 전문가로 1997년부터 세계은행에서 근무해 왔다. 2005년 6월 울포위츠가 총재에 부임하자 그는 미 국방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울포위츠는 리자의 월급을 계속 세계은행에서 주도록 했다. 연봉도 36%나 올려줬다. 13만3000달러였던 것이 19만3590달러(약 1억9000만원)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 울포위츠가 '미국 민주주의 재단'에 합류하면서 처음 만났다. 99년 둘 다 이혼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 이미지 구긴 부시=파이낸셜 타임스는 17일 울포위츠 문제로 부시 행정부와 미국의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헨리 폴슨 재무장관 등은 "울포위츠가 버틸수록 세계은행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며 그의 조기 사임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딕 체니 부통령과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은 "유럽 국가들이 울포위츠 사퇴를 요구하는 건 그가 이라크전쟁에 앞장선 데 대한 보복"이라며 사임론을 거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사임이 늦어질수록 부시 대통령만 타격을 받는다"고 진정해 문제를 푼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퇴진에 이어 울포위츠의 사임으로 네오콘의 쇠퇴는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후임에는 로버트 졸릭 전 국무부 부장관, 로버트 키밋 현 재무부 부장관, 마틴 펠드스타인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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