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김세배 선생님 세배 받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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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전,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첫 담임 선생님은 짧은 곱슬머리에 이마가 넓었다. 선생님의 이름은 '김세배'. 아이들이 "한배.두배.세배"라고 놀리면 선생님은 묵묵히 미소만 짓곤 했다.

그해 여름, 나는 홍역을 앓아 한 달 정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 한 달 동안 선생님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들렀다. 부모님과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저녁 시간이 되면 식사도 않고 그냥 가셨다. 집이 시내인 선생님은 평소보다 딱 두 배의 거리를 더 걸어 퇴근하는 셈이었다. 뒤에 부모님께 물으니 선생님은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선생님은 마루에 걸터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런 뒤 "책 많이 읽고, 건강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뒤 조용히 집에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께서는 가난한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뜻을 몰랐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빠 학교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오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예사 길이 아니었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3km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집까지 오려면 땅콩 밭과 복숭아 과수원, 보리밭을 거쳐야 했다. 길 중간의 모래밭은 비가 오면 걷기 힘들 정도로 땅이 질퍽거렸다. 그래도 선생님은 버드나무 숲 사이를 걸어 매일 우리 집에 오셨다. 그런 선생님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선생님께서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포근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막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은 늘 있었지만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선생님께 연락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오랜 세월 수많은 제자를 길러 내셨기 때문에 찾는 제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도 선생님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고이 간직하면서 매년 스승의 날이면 마음으로 '세배' 드린다. 스승의 사랑을 세상 살아가는 힘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것도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먼 길 오셔서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빛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성영(48.경남 진주시 하대동.논술강사)

6월 1일자 주제는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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