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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보리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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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김제 들녘은 초록이 넘실댑니다. 논배미를 가득 메운 풋풋한 보리가 바람 따라 이리 남실 저리 휘도니 너른 들판이 물결처럼 일렁입니다. 매끈한 줄기며, 까끄라기 숭숭 솟은 이삭에 물방울을 송골송골 매달고선 진양조 장단으로 흐느적거리는가 하면, 어느새 휘모리 장단으로 세차게 휘몰아칩니다. 온 들판이 덩더꿍합니다.

흔히 김제평야를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이라 합니다. 이는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땅이 너르다는 뜻일 겁니다. 더구나 이곳 사람들은 '징게맹게 외배미들'이라며 한술 더 뜹니다. '징게맹게'는 김제와 만경을 일컫는 사투리고 '외배미'는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처럼 드넓다는 뜻입니다. 오죽하면 조정래 선생은 소설 '아리랑'에서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했겠습니까.

사실 우리 땅에서 지평선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만큼 너른 평야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짝 안개가 오른 날이면 김제에선 지평선을 볼 수도 있습니다. 먼발치 지평선에 걸린 야트막한 산이 안개에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대지에 넘실대는 보리 물결을 볼 수 있는 곳도 여기만한 곳이 없습니다. 봄비 내리는 5월의 징게맹게 외배미들은 넘실대는 보리 물결로 들썩들썩합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리를 사진에 담아 보세요. 관건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셔터 스피드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바람이 셀 때 셔터 스피드를 너무 느리게 조절하면 자칫 밋밋한 사진이 되기 십상입니다. 바람이 약할 땐 흔들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셔터 스피드를 다양하게 바꾸면서 적절히 흔들리는 순간을 찾아보세요. 앵글 속에 정지된 사물을 배치해 흔들림과 대비하면 그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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