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블로그]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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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값이 휘발유보다 더 비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유회사의 휘발유와 경유 출고가격을 비교하면 실제 경유가 휘발유 값보다 더 비싸더군요.

대한석유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5월 둘째 주 주유소 가격은 휘발유 1리터가 1532원98전으로 경유 1236원28전보다 비쌉니다. 그런데 공장도 가격을 비교해보니 세금을 내기 전 가격(세전공장도가격) 출고가격은 휘발유 600원62전, 경유 604원81전으로 휘발유 값이 4원 쌉니다. 작년 9월에는 경유 세전공장도가격이 1리터에 113원 이상 비싼 적도 있었습니다.

두바이유, 텍사스유(WTI) 등으로 불리는 원유 1배럴은 158.9리터로 이를 정제하면 휘발유는 12.712 리터(8%), 경유는 41.314리터(26%)가 나온다고 합니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나 경유가 나오는 비율이 일정하므로 원가 면에서 휘발유와 경유가 차이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휘발유는 정제량이 적고 질도 좋은 것으로 인식돼 값이 비쌀 이유가 많습니다. 실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휘발유가 경유보다 더 비싸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경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살인적인 세금과 정부의 경직된 세금정책 때문입니다.

정부는 2000년 마련한 에너지 세제개편 계획에 따라 경유 값을 2006년 7월 휘발유값의 7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음해인 2001부터 매년 7월 교통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 세금을 올려왔습니다. 경유 소비자가격은 2001년 7월 1리터에 679원에서 735원으로 56%(8.2%)가 올랐습니다. 경유에 붙는 세금은 2002년, 2003년, 2004년 7월에도 계속 올렸습니다. 하지만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큰 변동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던 중 정부는 경유차량의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경유 값을 더 올리기 위해 2차 에너지 세제개편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2004년초 경우 값은 휘발유 값의 63% 수준이었습니다. 기존 세제개편 계획에 따라 2004년 7월 휘발유 값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 정부는 2004년말 경유 값을 2007년 7월까지 85% 수준으로 올린다는 추가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이미 많으니 큰 변동을 주지 않고 경유에 붙는 세금을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유에 붙이는 세금부과 기준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경유 1리터에 일정액의 교통세 등을 물리는 종량세로 부과했기 때문입니다. 2004년 7월 오른 경유에 붙는 세금은 1리터에 교통세 287원,43원5전(교통세의 15%), 지방주행세 61원71전(교통세의 24%)로 고정한 것이죠.

2004년 상반기 휘발유 값의 64% 수준이던 경유 값은 세제 개편에 따라 2004년 7월부터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유에 붙는 세금을 다시 왕창 올렸습니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7월 둘째 주 경유의 세후공장도가격(부가세 10% 포함한 출고가격)은 1리터에 895원6전으로 휘발유 1267원의 70%에 맞추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유사들이 경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을 휘발유보다 높게 책정한 것이죠. 2004년 6월 마지막 주 겨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은 417원76전으로 휘발유 414원35전보다 3원 가량 높아졌습니다. 경유 값이 처음으로 휘발유 값을 앞지른 것이죠. 이후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 차는 벌어져 다음해인 6월 둘째 주에는 경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은 496원6전으로 휘발유보다 41원 이상 높아져 교통세 등을 붙인 세후공장도가격은 976원6전으로 휘발유 1318원8전의 74.1%까지 올라버렸습니다.

이미 경유 값이 휘발유 값의 75%(2005년 7월이후 목표치)에 도달했는데도 정부는 세제개편 계획에 따라 2005년 7월 다시 경유의 교통세를 287원에서 323원으로 인상하는 등 세금을 올렸습니다. 이에 따라 경유의 세후공장도가격은 7월 둘째 주 1124원4전으로 휘발유 1368원의 82.2%까지 올라버렸습니다. 2006년 6월에는 83.3%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경유 값은 2006년 7월이후 목표치인 휘발유의 80% 수준을 넘었지만 정부는 세제개편 계획을 고수해 다시 7월 경유에 붙는 세금을 또 올렸습니다. 경유에 붙는 유류세, 즉 교통세+교육세+주행세로 1리터에 496원67전으로 47원7원을 인상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2006년 7월 둘째 주 경유의 세후공장도가격은 1266원6전으로 휘발유 1456원5전의 87%에 이르게 된 것이죠. 정부의 최종 목표치인 85%를 1년 앞당겨 달성한 셈입니다

경유 값은 2006년 9월 세후공장도가격이 1250원8전으로 휘발유 값의 89.3%까지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때 경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은 642원91전, 휘발유 528원98전보다 무려 113원이나 비쌌습니다.

이후 정유사가 경유와 휘발유의 세전공장도가격 차이를 줄이면서 이달 둘째 주에는 81% 수준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경유와 휘발유의 세전공장도가격 차이는 4원19전으로 확 줄었습니다.

경유와 휘발유 값 차이가 들쭉날쭉한 것은 정유사가 세전공장도가격을 결정하면서 경유와 휘발유 세전공장도가격을 너무 많이 줄였다늘였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자는 정부의 경직된 세금 운용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유나 휘발유 1리터에 무조건 얼마씩 금액을 정해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죠.

휘발유나 경유는 값이 왠만큼 올라도 소비가 크게 줄었다늘었다 하는 심한 변동은 없습니다. 최근 2년간 석유류 가격이 많이 오른 적도 있지만 소비량은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경유나 휘발유 1리터에 일정한 세금을 붙이니 정부는 쉽게 세금을 걷을 수 있겠죠.

하지만 세금액이 일정하다 보니 국제원유 값이 내려도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가격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국제원유 값이 폭등하면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가격은 크다고 아우성입니다.

휘발유나 경유에 붙는 교통세에는 법정세율과 탄력세율이 있다고 합니다. 법이 정한 세금액이 법정세율로 국제원유 값의 변동에 따라 법정세율 상한선 내에서 실제 적용하는 탄력세율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웃기는 소리 아닙니까. 일정한 액수를 정해 매기면서 '세율'이라는 용어를 쓰다니…

올 7월에도 경유에 붙는 세금은 오를 예정입니다. 세제개편 계획에 따른 것이죠. 이달 현재 경유 값이 휘발유 값의 81.7% 수준이기에 올릴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유와 휘발유의 세전공장도가격을 재조정하면 경유 값은 휘발유의 90%이상으로 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문제를 간과하고 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또 세금을 올린다면 문제입니다.
그동안 잘 몰라서 소비자가 참았지 이런 세금 구조를 안다면 더 이상 참기 힘들겠죠.

그리고 정유사에도 바랍니다. 경유와 휘발유 공장도가격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요. 가격결정은 정유사의 권한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경직된 세금 정책을 논하기에 앞서 자율적인노력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괜히 뒤에서 맞고 앞에서 넋두리하지 마십시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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