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대학 의사 "과잉" "부족" 수치 논쟁|의대 신·증설 신청에 의료계 거부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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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전국 대학들의 의대 신·증설 신청과 의료계의 이에 대한 극력 저지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의료인력의 수급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의학협회·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는 지난주 「보건의료관계 전문인력 양산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대통령 앞으로 보낸 외에 21일 같은 진정서를 국무총리실·교육부 등 관계기관에 발송하는 등 의대 신·증설 반대에 목청을 돋우고 있다.
현재 교육부에 의대 신설을 신청한 학교는 강원대·서울시립대·명지대 등 10개교며 한의대와 치대 신설 및 증원신청을 한 학교까지 포함하면 30여개교가 된다.
양측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명분은 의료인력 수급문제. 의료계는 2000년대 의료인력은 초과공급 상태를 면치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비해 의대 설립을 요구해온 대학측은 의료계의 주장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 모두 기존 의료계가 누리던 특혜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양주장의 내용과 타당성 등을 점검해 본다.
◇의료계 주장 = 작년 인제대 의대 정영일 교수(보건학)가 의협 의뢰로 한 연구는 『현재의 입학정원을 묶는다해도 95년이 되면 의료인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되며 2010년엔 1만5천여명의 의사 과잉공급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92년 현재 의협이 밝힌 우리나라 면허등록 의사 수는 4만8천3백6명으로 2010년엔 8만2천8백67명(한의사 포함 9만8천여명)이 공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의사 1명당 인구수로 추계할때 95년 8백32명, 2000년 7백3명, 2005년 6백8명, 2010년 5백40명으로 2000년대 초에 이미 현재의 선진국 수준을 능가, 의사 과잉공급의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의사 과잉상태는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민의료비를 상승시키며 의사의 실업발생으로 고학력·고투자 인력의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의료계는 주장하고 있다. 의협의 최인수 홍보실장은 『현재 기초의학 교수가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의대의 신·증설은 의학교육 부실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신·증설 대학측 주장 = 「3시간 대기 3분 진찰」의 현실이 보여주듯 현재 의사 수는 절대 부족하며 이는 2000년대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므로 연간 2백명 정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
강원대가 교육부에 올린 건의서에 따르면 89년 의사 1명당 인구수는 1천7백66명으로 87년 일본의 6백39명, 82년 미국의 5백52명에 비해 3∼4배 수준이다. 의대 신·증설 입장을 고수해 온 양봉민 교수(서울대 보건대)는 현재의 정원을 동결할 경우 2010년 공급예상 의사 수는 7만8천9백80명인데 비해 수요는 9만7백여명으로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추계했다.
양교수의 예측은 의사 1명당 하루 외래 40명 또는 입원환자 13명을 진료한다는 가정하에 계산된 것이다. 이에 대해 강원대측은 양교수의 추계가 의료수요는 과소평가하고 의사의 진료능력은 과대평가한 것이라며 더 많은 수의 의사인력 부족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점 = 양측의 의사과잉·부족 주장은 국민들은 물론 관계자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혼란의 근본적인 문제는 객관성과 과학성을 내세우며 제시하는 통계의 작위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양측이 제시하는 의사수급 추계치는 우선 같은 가정인 현재의 입학정원을 동결한다 할 때도 의협측이 제시하는 것과 의대 신청 대학측 사이에 약 4천명 정도의 차이가 있다. 더욱이 수요 추계치는 2만∼2만5천여명의 차이가 난다. 수요치의 경우 의사 하루 진료량, 국민의 의료이용률 등 기준이 다르며 또 취업의사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도 다르다.
이에 대해 연세대 의대 손명세 교수는 『단순히 의사 수를 비교할게 아니라 의료시설과 의료행태, 의료의 질 등을 고려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득권 고수를 위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이 보다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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