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임꺽정 보여주겠다"|장편 『해적』 전반부 탈고 작가 김중태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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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보사 부지사건 등 상상도 못할 부조리가 우리사회에 판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건자체를 즐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80년대 초 단군이래 가장 큰 도적에게 당해서인지 큰 도적, 큰 사건에 관용해 버리는 우리의 의협심을 되살리기 위해 이 작품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작가 김중태씨(47)가 장편 『해적』 전반부 4권을 최근 출간했다(실천문학사간). 계간 『실천문학』 91년 가을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하는 이 작품은 부패한 정치권력과 이에 기생하는 조직폭력의 실상을 그려 나가고 있다.
양식어업에 밀려 생활터전인 앞 바다를 뺏긴 어민들은 밤에 몰래 바다에 나가 마치 도둑처럼 고기를 잡는다. 그러다 양식업자들이 고용한 깡패들이 타고 있는 관리선에 붙잡히면 해상에서 죽지않을 정도의 폭력을 당하고 뭍으로 끌려와 도둑으로 감옥에 간다. 이렇게 약탈당하는 어촌의 한 젊은이가 저항하는 모습을 현대판 의적으로 형상화, 폭력조직의 실상과 그들의 권력조직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 것이 소설 『해적』이다.
밤마다 공유수면을 놓고 펼쳐지는 조직폭력배간, 혹은 어민과 폭력배간의 해상격투, 폭력배간의 세력확장을 위해 벌어지는 뒷골목 세계, 그리고 우리의 정치·사회사가 맞물리고 여기에 통쾌하게 저항하는 주인공을 그려나감으로써 이 작품은 활극으로서의 재미와 함께 사회소설로서의 무게도 지닌다. 특히 뱃사람·뒷골목 사람들이 내뱉는 투박한 남도 사투리와 육담에 김씨 특유의 이야기꾼 재질이 보태져 읽을 재미를 더하게 한다.
『임꺽정에 버금가는 우리시대의 의적소설을 써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홍명희는 역시 천재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사여구 하나도 없이 무지랭이들의 언어만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도 기막히게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김씨의 언어는 살아움직이는 듯한 탄력을 느끼게 한다.
일제하에 활동했던 작가들에 맞서 해방 후 태어난 작가들은 그들이 순수 한글세대임을 내세운다. 일어 번역투나 무거운 한자에서 벗어나 그들이 구사하는 순 한글문체의 우수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문체·문장은 상당히 서구화돼 있다. 그러다보니 작품이 삶과 유리되고 따라서 읽을 맛도 떨어진다.
김씨는 『해적』이 삶과 유리되지 않도록 10여년간 남도의 항구와 뒷골목을 찾아다니며 폭력조직의 실체와 그들의 어투를 익혔다. 『서방파·배차장파·칠성파 등 폭력조직의 거물들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러나 조직보호를 위해 입들을 다물어요. 수없이 찾아다니며 몸으로 그들의 세계를 익히고 낌새로 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게해서 몸에 밴 그들의 세계를 작품화하려 했을 때 김씨는 『목숨이 둘이면 써라』 『나 비슷한 인물이 나오면 칼 맞아 죽을 줄 알아라』는 끔찍한 협박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현재 4편까지에서는 바다나 항구도시에서 자랐던 폭력배들을 좀더 큰 먹이를 찾아 중앙에 진출시켜 이후로는 거대 폭력조직의 실상을 리얼하게 그려나가게 된다. 권좌에 앉은 맏형의 위세를 업고 대구 동네건달에서 관변극우조직 총재가 된 전명완, 저돌적인 칼잡이로 조직을 위해 감옥과 죽음만 택하는 서림파 두목 김태웅, 서차장파 두목으로 강력한 극우조직 총재인 이숭원 등을 등장시키며 그들과 연계된 권력의 부대상도 드러낸다.
『한나라가 썩은 고기라면 폭력배는 그 고기에 들어붙는 쇠파리떼』라는 김씨는 『지방의 폭력조직과 의적을 서울로 불러올려 총체적으로 썩은 세상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한 회사 직원으로 70년대 말 여천공단 토목공사차 내려갔던 김씨는 쫓겨나는 원주민들의 참담함을 보고 작품을 쓰기 시작, 8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대표작으로는 원주민들의 몰락을 다룬 『쫓겨나는 사람들』 연작과 분단과 화합을 다룬 『설촌별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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