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한국 분, 한국 사람, 한국 놈

중앙일보

입력

올해는 한·중 수교 15주년이다. 그러고보니 이곳 선양 서탑에 한인타운이 형성된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예전 황량했던 서탑에 한국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면서 서탑 한인타운이 형성됐다.
 
초기만해도 서탑에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선양의 한국 사람이면 누가 누군지 서로를 잘 알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지금 번화가인 서탑에 식당도 별로 없었고, 현재 휘황찬란한 상가들은 덩그러니 빈 건물로 방치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한국인들이 서탑에 물밀듯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탑은 갑자기 중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인타운으로 부상했다. 전에는 비행기를 타면 대부분 아는 얼굴이었으나 IMF 이후로는 아는 얼굴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 즈음부터 서탑엔 하루가 멀다고 사건 사고가 잇달았다. 한국 사람끼리 혹은 동포와 갈등이 생겼고, 분쟁이 생겼고, 다툼이 생겼다.
 
그러면서 동포 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초기엔 중국인들이 '한국 분'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IMF에 접어들면서 '한국 사람'으로 부르는 빈도가 높아지다가 언제부턴가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도 '한국 놈들'이라고 대놓고 부르기 시작했다.
 
IMF로 인해 한국인의 위상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사실 수준이 떨어지는 한국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여러 곳에서 허장성세를 부리고 동포들을 무시하고 사기를 치는 등의 물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IMF도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난 요즘은 한국 교민 사회나 동포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그런 문제들이 많이 수그러 들었지만 아직도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것 같다.
 
우스개 소리겠지만 여전히 서탑에는 세 종류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바로 한국 분과 한국 사람, 그리고 한국 놈이다. 어떻게 이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식당에서 복무원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다고 한다.

한국 분들은 부드럽게 손짓하면서 "아가씨(복무원), 이리 와보세요"라고 조용하게 부르고, 한국 사람은 "복무원, 여기~"라고 하고 한국 놈은 "야, 복무원. 이리와 봐!"라고 큰소리로 외친다고 한다.
 
그러면 복무원들은 한국 분들에겐 그에 맞는 대접을, 한국 사람들에겐 일반적인 서비스를, 한국 놈들에겐 최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대일 맞춤형 복무를 한다. 사실 식당에서 근무하는 나이 어린 복무원들이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거나 구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고 호통을 치는 한국 손님들을 보면 정말 민망하다. 잘 모르는 한국말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얼마나 보기좋은 풍경인가!
 
사실 큰소리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서탑(혹은 중국) 에 처음 오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을 절대로 만나지 마라. 다 사기꾼이다. 특히 서탑은 사기꾼들의 소굴이다."라고.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오면 같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거나 찾지않고 용감하게 자기만의 연줄을 개척해가면서 사업을 진행한다. 중국은 연줄만 있으면 다 된다고 착각하면서 중국인 혹은 현지 동포들과의 관계 구축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는 십중팔구는 다 털리고 한국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일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서탑의 교민 사회는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되고 성숙했다. 이곳엔 재력이나 학력이나 성품이나 경험이 풍부한 한국 사람들이 적지않다. 기꺼이 한국인을 도와주고 챙겨줄 봉사정신이 강한 섬김이들이 많고 단체들도 많다. 수많은 분야의 사업과 아이템에 대한 경험이 축적이 되어있다. 일단 한인회에 전화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 사업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숨기려고만 한다. 사실 다 알고 있는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그리고는 최악의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한인회나 관련 단체를 찾는다.
 
서탑에 오는 한국분들이여! 제대로 한국분으로 대접받고 살자. 식당에서는 조용조용 주문하시고,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꼭 한인회를 찾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빈나무 [blog.joins.com/daffodilove]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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