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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로 간 美 실버타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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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 뉴저지주 티넥에 소재한 한 고급 노인아파트. 따사로운 초겨울 햇살이 비치는 아파트 로비에 들어서자 맑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친구처럼 지내는 입주자 10여명을 앞에 두고 연주하는 이는 올해 92세의 어빙 레빈.

검안의(檢眼醫) 출신인 그에게 "피아노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말을 건네자 "젊은 시절엔 잘 친다는 소릴 들었는데 지금은 별로 잘 못 친다"며 수줍어했다.

침실 한두 개에 월세가 4천~5천달러(4백80만~6백만원)에 이르는 이 아파트는 하이야트호텔이 운영하고 있다. 하이야트는 이곳 외에 뉴욕.사우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 등 11개 주 19곳에 '클래식 레지던스'라고 명명한 고급 노인아파트를 직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아파트들이 모두 대학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티넥의 아파트도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페어리 디킨슨 대학을 두고 있다.

이 대학이 운영하는 미술교실을 즐겨 찾는다는 에스텔 루빈슨(85)할머니는 "찰흙이나 종이로 수공예품을 만들어 손자들에게 선물하는 걸 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야트가 지난 봄 실리콘 밸리의 중심부인 팰러앨토에서 분양한 노인아파트 3백88가구도 지척의 스탠퍼드 대학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부유한 노인층을 겨냥한 대학가 노인촌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런 아파트는 기존의 실버타운이 내세우는 의료 서비스와 헬스센터는 기본이고,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로'평생학습'을 내세운다. 평생교육의 기회를 옆에 두고 언제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런 노인촌은 현재 미국 60여곳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7천6백만명에 이른다. 은퇴기에 접어든 이들을 겨냥해 부동산개발 회사와 대학들이 손잡은 것이다.

보스턴 근교 뉴튼이란 마을의 라셀 빌리지. 라셀 대학이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캠퍼스 노인촌의 대표적인 곳이다. 이 아파트는 입주자들에게 연간 4백50시간의'숙제'를 주고 있다. 대학 수업을 듣거나 체력을 단련하거나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시간이 이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걸 부담으로 느끼는 노인들은 없다고 아파트 관리실의 바버라 설리반은 말했다. 평균 나이가 거의 80세에 이르지만 모두들 젊은이들 못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적극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이런 아파트들은 수용 인원이 한정돼 있어 입주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라셀 빌리지나 미시간 대학 내 노인아파트는 동문이거나 은퇴한 교직원에게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부자 노인들을 겨냥한 곳이기 때문에 비용은 비싼 편이다. 라셀 빌리지의 아파트 값은 30만~75만달러에 이르며 한달에 2천5백~3천달러의 관리비를 별도로 내야 한다. 지난 봄 분양된 팰러앨토의 클래식 레지던스 중 가장 비싼 것은 3백90만달러였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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