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헌 총대 멘 나카소네 전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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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88세의 일본 노정객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1982년부터 5년간 총리를 지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주인공이다.

"새 헌법을 만들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하고 누군가 깃발을 흔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걸 내가 맡겠다."

지난달 5일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개헌의 기수'를 자청했다.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신헌법 제정 의원동맹'을 통해 헌법 개정 국민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의원동맹에는 현직 국회의원 148명이 소속돼 있다. 나카소네가 1월 회장을 맡은 뒤로 83명의 의원이 새로 가세했다. 이달 3일에는 의원동맹이 작성한 신헌법 전문 초안을 독자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나카소네는 90년대 중반 '종신 비례대표 1번' 자리를 보장받은 자민당의 원로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세대교체를 내걸고 연령 제한을 설정하는 바람에 의원직을 내놓았다. 다시 기회가 찾아 온 것은 아베 총리의 등장과 함께였다. 그는 수시로 아베 총리를 만나 정국 운영의 지혜를 빌려주면서 영향력을 회복했다.

나카소네와 아베를 연결해 주는 공통점은 '개헌'이다. 청년 시절 해군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우파 성향이 강했다. 그의 정치 신념인 '전후 정치의 총결산'은 아베 총리의 '전후 체제의 탈피'와 일맥상통한다. 나카소네는 자민당의 주류였던 '경(輕)무장.경제우선' 노선을 비판하고 군사 분야를 포함한 일본의 국제적 역할 강화를 주창했다.

군비 강화의 장애물인 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것은 나카소네의 오랜 지론이다. 헌법 9조는 결코 손댈 수 없는 '불마(不磨)의 대전(大典)'이 아니란 입장이다. 자서전에는 "경무장 노선은 국가 방위를 미국에 내맡기는 것으로 국민의 정신을 비뚤어지게 한다" 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총리 재임 시절에는 신념과 달리 개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8월 15일에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참배하고, 방위예산을 국민총생산(GNP)의 1% 이상으로 증액하는 정책에서 신념을 관철했다. 나카소네는 14일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 확정 통과 뒤 "자민당 창당(55년) 당시의 강령에는 자주 헌법의 제정이 들어 있다. 그 본류로 돌아오기까지 50년이 걸렸다"며 감회에 젖었다.

최근에는 개헌 실현을 위한 복안을 공개리에 전파하고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 3분의 2의 찬성을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만큼 정계의 빅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야당인 민주당과 연립을 맺는 '대연립' 구상 또는 민주당 안에도 상당수를 차지하는 개헌론자들을 끌어내 포용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로 다가온 일본의 개헌 정국에서 노정객 나카소네의 구상이 어떤 형식으로 실현될 것인지 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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