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요지경 병역특례 비리, 발본색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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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이 병역특례 비리와 관련, 업체 대표 5명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자격이 없는 병역특례자를 채용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그러나 이런 수법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서류 위조를 통한 유령 특례업체의 설립과 지원자 모집, 업체 간 정원(TO) 빌려주기 등 상상을 초월한 신종 수법이 동원됐다고 한다. 검찰 고위간부가 "이번 수사는 하면 할수록 싫어진다"고 한탄했다니 비리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 같은 비리 수법의 다양화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병역비리를 저지르는 계층이 대부분 부유층.지도층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관급 공직자인 K씨의 아들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 밖에 전.현직 장.차관급 아들 10여 명도 수사대상이라고 한다. 4급 이상 공직자의 아들로 특례업체에 근무 중인 56명 가운데 20여 명이 전공분야와 관련없는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과거 신체검사 조작을 통한 비리보다 더욱 심각하다. 돈 있고 힘센 계층은 교묘하게 병역을 기피하고, 그렇지 못한 계층은 '군대 가서 썩는다'는 악성 풍조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 제대로 가면 바보'라는 얘기가 부유층.지도층 사이에 나돈 지가 오래다. 비록 소문이지만 이번 사건의 여파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충격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병무청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리가 싹틀 수 있게 된 데에는 해당 업체도 문제이지만 병무청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특히 형식적인 실태 조사로 특례자의 근무 이탈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직무유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은 이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는다는 사명감을 갖고 이번 수사에 임해야 한다. 업체 비리는 물론 병무청의 방조 여부 등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 이번만큼은 병역비리를 뿌리뽑는다는 각오를 다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