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논술] 영역별로 짚어 보는 인간 소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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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씨가 미 버지니아대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르며 인간 소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다. 인간 소외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적 차원의 문제인지, 현대 사회에 들어와 불거진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 소외의 문제를 사회ㆍ심리ㆍ경제ㆍ과학 등 영역에서 집중 조명한다.

개인주의 배경·부작용 등 다뤄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사고방식이 산업화 이후 팽배해졌다. 타인과 교류에 의미를 두지 않는 젊은이가 늘면서 소외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됐다. 교과서는 현대 사회의 소외 현상을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심리학'(대한교과서)의 ‘건강한 삶과 부적응의 양상들’ 단원은 건강한 삶을 만드는 필수 조건으로 적응을 꼽았다. 적응은 자신의 욕구를 적절히 조절해 실현가능한 범위 내에서 충족하는 과정이다. 소외는 부적응의 상태이며 욕구 충족이 좌절돼 생긴 스트레스로 사고와 일탈 행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교과서는 소외 현상의 원인으로 기술 문명의 발달이 야기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강조하기도 한다. '시민윤리'(교육인적자원부) ‘삶의 설계와 직업 선택’에서는 인간은 일을 통해 사회 속에서 소속감과 소명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일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노동에서 소외된 삶은 인간으로서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공허하다며 노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회'(대한교과서)의 ‘공동체 생활과 사회 발전’은 소외 현상의 배경을 도시화에서 찾았다. 집단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 사회는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문화가 중시됐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으로 다양한 직업을 갖는 도시에서는 ‘나’의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교과서는 분석했다.

 『문학(상)』(교학사)에 실린 고골리의 ‘외투’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인간 소외 현상을 표현한 대표적 작품들이다. 사회에서 냉대당하고 타인과 교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어 소외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박형수 기자

사회 … 자기 상품성 높이기에만 혈안 갈수록 인격적 교류에 무관심

소외는 현대 사회의 산물로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다. 기계의 힘은 사람의 능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1900~80)이 경고한 대로 산업사회에서 핵심적 일은 모두 기계가 도맡아 하고 사람은 한낱 부품에 불과한 조직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영위하게 하고자 고안해낸 기술문명이 도리어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킨 것이다.

 소외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성이 상실돼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1818~83)는 물질적 차원에서의 인간 소외를 탁월하게 설명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 즉 인간성이 노동에 있다고 강조하며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과 인간을 분리함으로써 소외 현상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빼앗김으로써 인간의 참다운 본질과 가치에서 스스로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됐다고 비판했다.

 산업화와 물질문명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소외는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인간은 주체적 존재로서 존중받기보다는 상품 가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지속하지만 타인과의 인격적 교류에는 관심이 없다. 더 나아가 현대인은 자아가 아닌 본인의 상품성 상실을 소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더불어 산업화가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 세계화는 소외와 부적응을 새로운 차원으로 몰아간다. 성장 환경과 전혀 이질적인 곳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는 상품가치로 평가되는 자본주의적 소외와 함께 주류 문화에 융화되지 못하는 심각한 고독감과 자기 부재 현상을 겪게 된다. 이민자의 수가 세계적으로는 2억 명에 달하며, 한국 사회도 100만 명 시대가 됐다. 건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정정훈(서울산업대 강사ㆍ역사)

☞생각플러스: 현대인들의 소외감을 심화시키는 제도는 무엇인지 사례를 찾아보고 그 개선방안을 제시하라.

심리 …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 도움 요청할 곳 없어 좌절

사회 구조가 변화하면서 현대인들은 소수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단절된 채 살아간다.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은 어떤 계기로든 좌절감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도움을 청할 사회적 안전망을 쉽게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겪은 좌절과 소외의 고통이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낯선 세상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이어져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는 이민 1.5세대로 편안한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고립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차별한 파괴로 폭발한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소외를 고립감, 무의미함, 도덕 기준의 상실, 무기력, 불화 등을 동반하는 ‘감정의 메마름’이라고 설명한다. 감정의 메마름 상태를 치유하고 타인과 친밀함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다. 성장기에 따뜻한 대화와 배려를 통한 소통의 방식을 학습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명령과 비난에 노출된 경우 성인이 된 뒤에도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기 쉽다.

 나만 동떨어진 섬과 같다고 느끼는 소외의 심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정서다. 하지만 이 심리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특히 자신의 삶을 타인의 가치관에 지나치게 끼워 맞추려 할 때 질병으로까지 번지기 십상이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이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미래에 대한 건전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공동체를 찾아 함께하려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가족ㆍ교회ㆍ인터넷 동호회ㆍ동창회 등 편안하고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한 단체 활동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소통하며 낯선 세상 속에서 느꼈던 소외의 고통을 치유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나미(이나미신경정신과 원장)

☞생각플러스: 소외와 같은 부적응에서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인 ‘자기 관리법’을 설명하라.

경제 … 낙오자 생기게 마련 … 재도전 도와줘야

 우리는 오늘날 시장경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업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내다팔아 이윤을 획득하고, 근로자는 기업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기업이나 개인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된다.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낙오자를 발생시킨다. 비효율적 기업은 도태되기 십상이고, 기업에 적응하지 못한 근로자는 승진에 뒤처지거나 쫓겨난다. 이것이 시장경제가 만든 소외다.

 소외된 사람은 자신을 낙오케 한 사회질서를 인정하기 힘들며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시위 등을 통해 저항한다. 게다가 기회 균등이 확보되지 않고 특혜가 작용하는 불공정한 시장경쟁 아래선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는 조사가 최근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 연구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각종 시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12조3000억원이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을 낙오시킨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봤을 때, 소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의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는 미국의 경우 경쟁에 낙오한 빈곤층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5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소외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시장경쟁을 없애면 어떨까. 북한처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수많은 주민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사회 안전망 확충과 복지제도 확대로 경쟁을 통해 시장경제의 활력을 살리되 소외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꼽히는 것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균형적 발전이다. 민주주의를 통해 공정한 경쟁 질서를 수립하며 낙오자에게 기본적 삶을 보장하고 재도전을 도와줄 때 바람직한 선진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육강식의 시장경제’가 아닌 ‘따뜻한 시장경제’다.  

김기원 교수(방송통신대·경제학)

☞생각플러스:시장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면서 소외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가 어떤 것이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라.

과학 도태 안 되려면 어릴 때 부터 사회성 길러야

 야생 동물의 세계를 상징하는 단어를 찾으라면 대부분 ‘적자생존(適者生存)’ 혹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떠올린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소외·도태된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동물 사회 역시 이런 원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무리 중 가장 힘세고 포악한 늑대가 우두머리가 되고 가장 난폭한 사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는 장면은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따라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패배자가 동물집단에서 소외되며, 이들 앞엔 냉혹한 죽음만이 있을 뿐이란 것을 정설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동물행동학자들의 관찰은 기존 통념을 뒤엎는다. 사바나 개코원숭이는 무리에서 가장 난폭하고 힘센 수컷을 암컷들이 힘을 모아 무리 밖으로 내쫓는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 늑대는 폭력과 억압이 아닌 중재와 희생을 통해 무리의 결속력을 다진다. 이들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존재는 가장 약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난폭하고 공격적인 존재다. 이들은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기 때문에 무리 밖으로 밀려난다.

 인간과 동물 사회에서 일치되는 점은 소외된 이유가 약해서건, 강해서건 공동체에서 밀려난 개체가 맞이할 운명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소외는 공동체가 조직 자체를 지키는 방어 시스템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외는 사회성을 키우지 못한 개체들의 부적응 현상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해리 할로(1905~81)는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떼어내 철저한 보건양육시스템으로 키우는 실험을 통해 보통의 원숭이 어미가 길러낸 새끼보다 더 크고 튼튼한 원숭이로 길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 원숭이는 무리에 섞이자 동료에게 극도의 적개심과 난폭성을 보여 무리에서 쫓겨났고, 결국 스스로 피가 날 정도로 꼬집는 자해증상을 보이다 죽어갔다.
 군집을 이루는 동물들에게 사회는 단순히 여럿이 모여 사는 집단이 아니라 개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 요소다. 사회에의 적응 여부가 개체의 생사를 결정하지만, 사회성은 본능과 달리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은희(과학칼럼니스트)

☞생각플러스: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사회성을 학습하기에 적합한 단체의 예를 들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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