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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특례 '요리조리 편법'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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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말부터 서울병무청 관할 1800개 업체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친아들을 채용하기 위한 '대표이사 바꿔치기', 특례 정원을 놓고 업체 간 거래를 하는 '정원(TO)거래' 등 다양한 편법이 판치고 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연예인 사이에서도 병역특례는 인기다. 병역 기피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를 비켜가면서도 퇴근 후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서 인기 댄스그룹 멤버 강모(27)씨 등 가수 3명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 부실 특례업체 인수도=재력이 있는 사람은 채용로비를 하기보다 아예 부실한 특례 업체를 인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는 몇 년째 이익이 거의 나지 않는 허울뿐인 기업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회사를 인수하면 법인 등기를 변경하고 대표도 바꿔야 한다. 그러나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이를 미루고 버티기도 한다. '특례업체 대표의 4촌 이내 혈족은 채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검찰에 적발된 일부 업체 대표는 자식을 채용하기 위해 미리 대표이사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다. 서울 테헤란로의 정보기술(IT) 업체 부장 박모(33)씨는 "공채 대신 추천에 의해 채용하는 관행상 회사 관계자들의 친인척이 근무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 돈 받고 엉뚱한 전공자 채용=병역특례자 채용 권한은 전적으로 업체에 있다. 병역특례 지정업체는 보충역 대상자의 경우 누구나 채용 가능하다. 현역 대상자도 관련 자격증만 있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를 이용해 비(非)이공계 전공자가 정보통신 관련 자격증을 딴 뒤 연줄을 동원해 특례복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은 자격증 학원가를 중심으로 업체들과 특례복무 희망자를 연결하는 브로커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일부 영세업체는 채용을 미끼로 수천만원씩 받고 특례요원을 채용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꺼번에 거액을 줄 형편이 못 되는 희망자에게 채용 뒤 월급 없이 일하는 '무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납품권을 따거나 유력인사에게 '줄'을 대기 위해 업체 쪽에서 먼저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렇게 채용된 특례자들 중 상당수가 제대로 근무하지 않고 유학이나 고시를 준비해 온 것으로 보고 각 업체의 출근기록부 등을 압수해 분석 중이다.

◆ 정원 빌려주기=병역특례 업체로 지정받았지만 필요한 만큼 정원을 배정받지 못하는 업체들도 많다.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정원을 배정받은 업체에선 채용된 특례요원을 돈을 받고 불법적으로 파견하는 비리가 포착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른바 '정원 주고받기' 거래다. 특히 산업기능요원 정원이 2005년 이후 3분의 1 수준으로 줄고 심사도 엄격해짐에 따라 정원을 주고받는 대가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4~5년 전 3000만~4000만원 수준이던 1명당 채용 대가가 최근 5000만~1억원대로 급등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자금 흐름을 좇고 있다.

◆ 관리는 허술=서울지방병무청의 관할 병역특례 업체는 1800여 개. 반면 실태조사에 참여하는 병무청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병무청은 지난달 앞으로 산업기능요원 정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2년엔 아예 없애기로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반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IT벤처기업연합회 허영구 기획팀장은 "감독 태만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부 부작용을 이유로 전체 업체에 피해를 주려 하는 병무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인성.이에스더 기자

◆ 병역특례제도=병역 의무자가 정부 지정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근무할 경우 병역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해 주는 제도. ▶석사 이상 학위 취득자로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전문연구요원 ▶일반 산업체에서 복무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나뉜다. 전문연구요원은 3년, 산업기능요원은 신체 등급에 따라 26개월(보충역)~34개월(현역 판정) 근무한다.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군 신체검사 결과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전공이나 자격증 소지 여부와 상관 없이 채용된다. 현역병 판정자는 관련 자격증이 필요하다. 특례자는 해당 업체로부터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현재 전국의 병역특례 업체는 모두 8381곳. 지난해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으로 채용된 인원은 각각 1만4239명과 1972명이다. 병무청은 2004년부터 현역 대상자의 부족 및 군 입대자와 특례자 사이의 형평성 시비를 우려, 특례 정원을 줄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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