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다’브랜드의 태국 전통 문양을 응용한 원피스.
◆글로벌 디자이너의 활약=파리나 뉴욕의 유명 백화점에서 방콕 출신의 디자이너 제품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방콕 패션의 대부 격이자 '그레이하운드(Greyhound)'라는 브랜드를 20년 이상 이끌어 온 디자이너 바누 잉카와트는 2003년부터 본격적인 글로벌화에 나섰다. 미국 뉴욕의 바니스, 영국 런던의 해로즈, 일본 도쿄의 이세탄을 비롯한 전 세계 백화점에서 그레이하운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 브랜드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쉰한 살의 디자이너가 세계 진출 4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둘 만큼 방콕 패션의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잉카와트는 지난해 2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제 그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고 접점을 찾았다"며 자신을 비롯한 방콕 디자이너들의 잠재성에 두터운 믿음을 보였다.
태국 방콕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피차차사나 브야그 라난다가 최근 방콕 패션쇼 주간에 발표한 작품.
◆동양적 감성+서구적 스타일=방콕은 이미 몇 년부터 전 세계 패션계에서 '스타일의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타임지는 '스타일의 땅(Land of Styles)'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방콕의 패션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패션 평론가 다이앤 퍼넷도 지난해 8월 방콕 패션위크에 참석한 자리에서 "태국의 디자이너들에겐 파리.밀라노 같은 도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열정이 있다"며 "그들의 작품은 동양적 감수성과 도시적 분위기를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구촌의 공감대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방콕을 직접 방문하고 돌아온 국내 패션 전문가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타일북'을 낸 서은영 스타일리스트는 방콕의 도약에 대해 "방콕 디자이너들의 옷은 패션쇼장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옷이 아니다"라며 "가격.스타일 등에서 누구나 큰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 태국 패션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왕족의 적극 지원=방콕의 패션산업이 급성장한 데는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와 지원이 있었다. 방콕을 패션 허브로 키워 보자는 목표 아래 태국 정부는 2003년부터 4500만 달러(약 420억원)를 쏟아 부었다. 연 33억 달러(약 3조원) 정도 수출해온 태국 의류산업의 부흥을 위해서다. 태국 정부는 이 돈으로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지원하고, 패션쇼 주간에 해외 바이어와 언론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지난해에는 '방콕 국제패션학교(BIFA)'를 설립, 패션학과 대학생들의 졸업무대까지 지원하고 있다.
방콕 패션을 떠받치는 또 다른 지렛대가 있다. 왕정 국가인 태국의 귀족들이다. 상류층의 고급문화를 발전시켜온 그들은 해외의 최신 트렌드가 빠르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파리에서 바이어로 일해온 류상엽씨는 "태국 왕가의 막내 공주인 서바나바리가 '플라이 투 누보(Fly to Nouveau)'라는 브랜드를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며 "브랜드 자체가 훌륭하다기보다 '공주'라는 상징적 인물이 패션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연 패션 칼럼니스트(kajony9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