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불러모은 금융관행/장성효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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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보사부지 사기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검찰의 수사는 계속되지만 의혹은 늘어만가고 금융시장 위축등 파장이 커가고 있다.
사실 경제담당기자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과거 대형 금융의혹사건보다 내용도 단순하고 딱히 금융사건이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번 사건처럼 우리 금융풍토의 실상을 드러낸 것도 없다. 사건의 성격을 축소시켜 단순한 사기에서 출발했다 해도 거기에 은행·보험·상호신용금고 등 금융기관이 휘말려들어 엄청난 사회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근본적으로 비정상적인 금융풍토 때문이다.
은행대리가 잔액통장을 가짜로 만들어 건네줬다는 것은 그도 사기단의 하나여서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수백억원의 돈입출이 빈번한데도 지점장이 이를 챙기지 않았고 돈의 성격을 몰랐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은행가에서는 거액예금일수록 예금주를 몰라야한다는게 불문율처럼 돼왔다. 얼굴을 알려해서는 돈을 쫓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은행들의 수신경쟁은 이상수준에 와있다.
이 와중에서 남의 이름을 도용,차명계좌까지 만들며 예금유치를 하는 등 편법이 동원되어 왔다.
보험회사도 가입자들의 돈을 대신해 운용하면서 6백억원이 넘는 부동산매입을 감독당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으며,부지매입대금으로 거액의 융통어음을 재무부에 신고도 없이 발행해 왔다. 대출한도를 어기며 어음을 할인해준 상호신용금고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든 일처리가 투명하다면 비리의 소지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는 바꿔말하면 이같은 비정상적인 금융관행이 사기꾼들을 불러모아 활동무대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다.
비정상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면 어느덧 관행 아닌 관행으로 굳어져 잘못이라는 생각은 커녕 그러려니 여기게 된다. 무서운 마비증상이다.
이번 사건에서 한술 더떠 가관인 점은 금융사고가 아니라며 단순한 사기사건으로 의미를 축소,번지는 불똥을 막으려는 재무부의 태도다. 설사 성격이 그렇더라도 이런 금융관행을 내버려두고 몸만 피해 나간다고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은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번 사건에 경제적 처방이 있다면 차제에 금융풍토를 혁신,모든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감한 시도밖에 달리 길은 없다.
그러나 이런 지적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금융당국도 그동안 이런 처방에 대해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니다」는 사실이 더 딱한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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