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교육, 편안한 가정 출신 다음 대통령 됐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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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범여권 ‘접착제’ 정대철 고문 그는 ‘대철이 형’으로 통한다. 적어도 범여권 유력 인사들 사이에선 그렇다. 올해로 정치 입문 30년을 맞은 정대철(63)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얘기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원장과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그가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접착제가 되겠다”고 자임할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나오지 않는다. 그의 최대 무기는 ‘마당발’이다. 친분 관계가 당적과 세대를 넘나든다. 서울 여의도 개인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담=최훈 정치에디터, 정리=김선하 기자

“바쁘냐”고 물었다. “바빠졌다”고 했다. “접착제 역할을 하려면 요쪽 저쪽 다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요쪽 저쪽’의 범주가 궁금했다. “민주당ㆍ국민중심당 사람도 만나고, 열린우리당을 나간 사람, 남아있는 사람 다 만난다”고 했다. “내 방에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만 해도 세 번쯤 왔을 것”이라며 “정동영ㆍ김근태 전 의장도 서너 번씩 다녀갔다”고도 했다.

-지난해인가요. 정계개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큰 변수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노 대통령의 전제가 나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난 대통령은 (임기) 끝나면 끝나는 건 줄 알았지. 정치 더 안 하는 줄 알았단 거죠. 그런데 이 양반은 하신다는 거야. 심지어 농인지, 진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의원 배지 달고 국회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신 분이에요. 전제가 다르니 내가 이해를 못할 수밖에. 하긴 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대선 4수 할 때도 전혀 안 할 걸로 생각했어요.”

-청와대의 진짜 속내는 뭘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간 미스터리야. 젊은이들 표현으로 하면 (열린우리당은) 사망선고에 확인사살까지 당한 거란 말야.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다? 무슨 뜻인지 정치 30년 한 나도 이해가 안 가요. 혹시 (대선은) 안 되니까 후보고 뭐고 (지금 있는) 당이라도 지켜보자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뭔지 좀 묻고 싶어요. 하여튼 노 대통령께서 요새 감정이 좀 상해 있는 것은 분명해. 좀 만나뵙고 풀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 중이에요.”

-최근 노 대통령과 정동영ㆍ김근태 두 분이 거센 비난을 주고받았는데요.

“노 대통령도 감정적으로 뭐가 좀 있으실 거예요. 특히 정동영ㆍ김근태 두 사람은 같이 내각ㆍ정당에서 코를 맞대고 있다가 갑자기 돌아서니 기분 나쁘다는 거지. 이해도 좀 돼요. 그러나 내가 정동영ㆍ김근태씨에게 물어봤는데 (노 대통령도) 같이 정권 창출한 사람들에게 연정이니, 개헌이니 사전 논의가 하나도 없었다더라고.”

-열린우리당 의원 10여 명과 함께 대선 예비후보자 연석회의를 추진 중이시죠.

“예비후보자들과 각 당의 실력자라고 할까, 이런 분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선 일정을) 역산해보면 6월 말까지는 통합신당의 틀이 서야 돼요.”

-제3지대에서 뭉치려면 일단 열린우리당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제3지대 통합은 탈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언제 할 건지는 의논 좀 해봐야지. 6월 14일 이후엔 상당히 많은 분이 (탈당)할 걸로 보는데….”

-대선주자 연석회의가 쉽게 될까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은 아직 뜻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주말에 주자들 몇 명이라도 우리 집에서 모여 저녁이나 먹자고 하려 해요. 정동영ㆍ김근태ㆍ문국현…. 다른 사람들은 아직 더 안 물어봤지만 내가 보자고 하면 부담이 없잖소, 다 가까운 후배들인데. 손 전 지사는 평양으로 떠나는 9일 공항에서 통화를 했어요. ‘형님, 갔다 와서 전화합시다’ 하더라고. 그 사람은 좀 나중에 보자는 생각 같은데 그게 언제쯤 될지. 우리는 우리대로 시간이 너무 없단 말야.”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던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하셨네요.

“나는 정 전 총장에 대해 기대가 좀 더 많았지. 사실 정치는 영화 못잖게 종합예술인데 영화보다는 자기 희생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밥상은 자기가 차려야지. 그런데 이번엔 우리가 답답하니까 밥상까지 차려주겠다고 했는데 두 분 다 상머리에 안 앉으신다 해서 좀 씁쓸해요. 정치란 게 이전투구하게 돼 있는 건데 곱게 꽃가마 타고, 백마 타고 오시는 걸로만 생각하신 거 같애. 또 이쪽 세상에 오면 뭐 검증하자는 게 많을 거 아뇨. 뒷골목에 소변 본 것까지 다 검증하자 할 텐데, 이게 참 시원찮은 일이거든.”

-정 전 총장을 만나셨을 때 그분이 “돈이 없다”고 하자 정 고문께서 “정치자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 얘기 한 적이 없어요. 누가 말을 잘못 옮긴 거 같애. 나중에 누군지 알았는데 정 전 총장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그런 얘기했다 그래요. 참 싱겁게 됐어.”

-충청도 출신의 다른 좋은 후보감이 있어 만나볼 생각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꼭 충청 출신만 찾은 건 아니고…. 최근에 대전고 출신의 모 은행장을 만나보긴 했어요.”

-만나신 분이 박해춘 우리은행장이란 보도가 사실인가요.

“괜찮은 것 같습디다. 관상이 좋더라고(웃음). 그러나 좀 더 지켜봐야 돼.”

-이번 대선에서도 DJ가 변수로 등장했는데요. 그분은 통합신당보다는 후보 단일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DJ의 진의를 박지원 비서실장 등 주변에 물어봤어요. 대통합신당 포기한 거냐 했더니 그게 아니래요. 대통합신당 통해 오픈 프라이머리로 가는 게 최선이고, 그게 안 되면 후보 단일화하란 뜻이었대. 앞부분이 생략된 거야. 그럼 우리 생각과 다를 게 없어요. DJ가 독일 가신다는데 이거 저거 궁금해하신다고 해서 조만간 찾아뵐 거요.”

-범여권 의원들은 호남표를 의식해 다시 DJ에게 눈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DJ가 호남표 좌지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남분들이 영특한 분들이어서 대통합신당으로 합치면 대선이든, 총선이든 거기에 표를 줄 것이라고 확신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설혹 DJ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돕는다고 하면 호남 사람들 9할이 그쪽으로 안 갈 겁니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합니까.

“정규적인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정규 교육도 받고, 편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이제는 시대가 그쯤 된 거 같아요. ‘정규병(兵)’ 중에서 됐으면 좋겠단 거지.”

- 그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들이 있나요.

“우리 쪽에선 불출마 선언한 두 분도 그랬고, 손학규ㆍ정동영ㆍ김근태ㆍ이해찬ㆍ한명숙….”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말씀 안 하시네요.

“유시민ㆍ김두관, 뭐 다들 한다는데. 많아요. 그러나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고….”

-정규병이라면 노 대통령과는 좀 차이가 있는 건가요.

“(잠시 말을 멈춘 뒤) DJ도 그렇게 정규병으로는 보이진 않거든. YS(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규병인지는 모르겠어. 어려운 시대에 국란을 극복하는 인물로선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젠 좀 더 국민 마음이 편해져야죠. 이 양반들은 거꾸로 국민이 그분들을 이해했어야 했잖아요. 앞으로는 지도자가 국민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3대 정치 名家’ 꿈 이뤄질까
정대철 고문 집안은 3대가 정치를 업으로 삼고 있다. 부친 고(故) 정일형 박사가 서울 중구에서 8선을 했고, 정 고문이 1977년 이 지역 보궐선거(당시는 종로중구)에서 당선된 뒤 5선(9ㆍ10ㆍ13ㆍ14ㆍ16대)을 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 중이던 정 고문을 대신해 아들 호준(36)씨가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호준씨는 현재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 중이다. 정 고문은 “아들 출마를 내가 극구 말리다 안 돼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동원했는데 거꾸로 나를 설득하더라”고 했다. 그는 “나도 정치 시작할 때 선친이 말려서 몰래 등록했다”며 “저 병은 못 고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앞으로 지역구 출마는 아들이 하기로 정리했다고 한다. 정 고문은 “그거 상당히 예민한 문제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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