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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상임고문 중앙SUNDAY 인터뷰 전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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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05면

정대철 고문은 직접 준비한 답변서를 들고 인터뷰에 임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말은 답변서 수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신동연 기자

“바쁘냐”고 물었다. “바빠졌다”고 했다. “접착제 역할을 하려면 요쪽 저쪽 다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요쪽 저쪽’의 범주가 궁금했다. “민주당ㆍ국민중심당 사람도 만나고, 열린우리당을 나간 사람, 남아있는 사람 다 만난다”고 했다.

“내 방에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만 해도 세 번쯤 왔을 것”이라며 “정동영ㆍ김근태 전 의장도 서너 번씩 다녀갔다”고도 했다.

-지난해인가요. 정계개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큰 변수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노 대통령의 전제가 나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난 대통령은 (임기) 끝나면 끝나는 건 줄 알았지. 정치 더 안 하는 줄 알았단 거죠. 그런데 이 양반은 하신다는 거야. 심지어 농인지, 진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의원 배지 달고 국회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신 분이에요. 전제가 다르니 내가 이해를 못할 수 밖에. 하긴 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대선 4수 할 때도 전혀 안 할 걸로 생각했어요.”

-청와대의 진짜 속내는 뭐라고 보세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간 미스터리야. 젊은이들 표현으로 하면 (열린우리당은) 사망선고에 확인사살까지 당한 거란 말이야.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다? 무슨 뜻인지 정치 30년 한 나도 이해가 안 가요. 혹시 (대선은) 안 되니까 후보고 뭐고 (지금 있는) 당이라도 지켜보자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뭔지 좀 묻고 싶어요. 하여튼 노 대통령께서 요새 감정이 좀 상해 있는 것은 분명해. 좀 만나뵙고 풀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 중이에요.”

-최근 노 대통령과 정동영ㆍ김근태 두 분이 거센 비난을 주고받았는데요.

“노 대통령도 감정적으로 뭐가 좀 있으실 거예요. 특히 정동영ㆍ김근태 두 사람은 같이 내각ㆍ정당에서 코를 맞대고 있다가 갑자기 돌아서니 기분 나쁘다는 거지. 이해도 좀 돼요. 그러나 내가 정동영ㆍ김근태씨에게 물어봤는데 (노 대통령도) 같이 정권 창출한 사람들에게 연정이니, 개헌이니 사전 논의가 하나도 없었다더라고.”

-노 대통령 복당(復黨)설도 있는데요.

“아까도 말했지만 정치를 계속하시겠다고 하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나 합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왜 (퇴임 후에도 정치를) 계속 못 하느냐’고 여러 군데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 하실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정세균 의장이 그러는데 노 대통령이 (복당)하겠다고 하면 지금 지도부가 의논 좀 해봐야 한다고 하더라고.”

-상황이 이런데 통합이 되긴 되는 겁니까.

“정세균 의장이 저녁을 사기에 내가 그랬어. 지금이 호기라고. 이제부터 잘 정신차리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거의 벼랑 끝에 가 있어서 이 길 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요. 그러니까 쫙 붙으면 블랙홀로 빨려들 듯이 갈 수도 있어요. 나는 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지금 실질적인 집권세력은 한나라당이에요. 작년 5ㆍ31 지방선거 이후 실질적으로 국민적 관심과 힘이 저쪽에 실려 있지요. 이쪽엔 청와대만 좀 있을 뿐이지, 실질적 집권세력은 저쪽이에요. 그래서 한나라당 대항세력들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3지대에서 중도통합신당을 만들 수 밖에 없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내게 될 것이라 봅니다. 정 안되면 후보 단일화라도 될 걸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 뿐 아니라 내년 총선도 이대로 가면 전멸 아닙니까.”

-당내 친노세력은 우리는 당을 지킬 테니 떠날 사람은 떠나라는데요.

“당에 친노세력만 잔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그럼 그분들도 대선후보를 낼 수 있겠지. 그 경우엔 이쪽의 통합신당도 후보를 내고 해서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만들어 내야지. 그렇게 보죠. 그분들도 우리가 갈라져서 그 결과로 한나라당이 당선되는 걸 앉아서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올 대선이 다자구도가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요.

“친노세력들이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경험을 아주 뼈저리게 느꼈던 실체들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단일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나라당 상황은 어떻게 될 걸로 보세요.

“우리가 후보가 전무하다시피 하고, 또 국민적 지지도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 정도 아닙니까. 옛날에 노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이) 우리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라고 뭐 그런 말도 했는데. 아무튼 저쪽은 지금 배부른 흥정하시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만 잘 차려서 하면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그쪽도 잘됐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열린우리당 의원 10여 명과 함께 대선 예비후보자 연석회의를 추진 중이시죠.

“예비후보자들과 각 당의 실력자라고 할까, 이런 분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을 원탁에 모아놓고 거기서 큰 합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지. 지금 (대선 일정을) 역산해보면 6월 말까지는 통합신당의 틀이 서야 돼요.”

-제3지대에서 뭉치려면 일단 열린우리당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제3지대 통합은 탈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언제 할 건지는 의논 해봐야지. 6월 14일 이후엔 상당히 많은 분이 (탈당)할 걸로 보는데….”

-대선주자 연석회의가 쉽게 될까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은 아직 뜻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주말에 주자들 몇 명이라도 우리 집에서 모여 저녁이나 먹자고 하려 해요. 정동영ㆍ김근태ㆍ문국현…. 다른 사람들은 아직 더 안 물어봤지만 내가 보자고 하면 부담이 없잖소, 다 가까운 후배들인데. 손 전 지사는 평양으로 떠나는 9일 공항에서 통화를 했어요. ‘형님, 갔다 와서 전화합시다’ 하더라고. 손 전 지사는 좀 나중에 보자는 생각 같은데 그게 언제쯤 될지. 우리는 우리대로 시간이 너무 없단 말이야.”

-특별히 호감을 갖고 있는 대선 예비주자가 있습니까.

“저는 통합신당 접착제 역할을 하겠다, 연석회의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고 하고 있어요. 혹 내 맘 속에 호감있는 후보가 있더라도 표시할 수도 없고, 표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던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하셨네요.

“나는 정 전 총장에 대해 기대가 좀 더 많았지. 사실 정치는 영화 못잖게 종합예술인데 영화보다는 자기 희생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밥상은 자기가 차려야지. 그런데 이번엔 우리가 답답하니까 밥상까지 차려주겠다고 했는데 두분 다 상머리에 안 앉으신다 해서 좀 씁쓸해요. 정치란 게 원래 이전투구하게 돼 있는 건데 곱게 꽃가마 타고, 백마 타고 오시는 걸로만 생각하신 거 같아. 또 이쪽 세상에 오면 뭐 검증하자는 게 많을 거 아뇨. 뒷골목에 소변 본 것까지 다 검증하자 할 텐데, 이게 참 시원찮은 일이거든.”

-자기 밥상 자기가 못 차리는 게 정치권 밖에 있던 분들의 한계라고 보시나요.

“예를 들면 오픈 프라이머리 하라니까 두분 다 거부하는 거야. 나를 모셔서 꽃가마 태워가야지 무슨 오픈 프라이머리냐는 거지. 그래서 내가 전국을 다니면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야 극적인 효과를 내고, 지지도도 뛰어오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 한다고 충고했어요. 그런데 금방 수긍을 못하더라고, 두분 다.”

-정 전 총장을 만나셨을 때 그분이 “돈이 없다”고 하자 정 고문께서 “정치자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 얘기 한 적이 없어요. 누가 말을 잘못 옮긴 거 같아. 나중에 누군지 알았는데 정 전 총장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그런 얘기했다 그래요. 참 싱겁게 됐어.”

-충청도 출신의 다른 좋은 후보감이 있어 만나볼 생각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꼭 충청 출신만 찾은 건 아니고…. 최근에 대전고 출신의 모 은행장을 만나보긴 했어요 .”

-만나신 분이 박해춘 우리은행장이란 보도가 사실인가요.

“괜찮은 것 같습디다. 관상이 좋더라고(웃음). 그러나 좀 더 지켜봐야 돼.”

-호남ㆍ충청 연합 필승론은 맞는 말입니까.

“(한나라당 후보가 둘 다 영남 출신이라) 지금 경상도가 똘똘 뭉쳐있다고 그래요. 그럼 우리도 대처를 좀 해야지 전혀 손을 못 쓴다면 현실과 동 떨어진 거죠.”

-2002년에 그랬던 것처럼 영남후보론도 또 나오는데요.

“그것도 가능한 얘기에요. 그쪽에 좋은 후보가 있으면…. 그래서 김혁규 의원 같은 분도 나오고 하는데. 혜성처럼 뛰어오르는 경상도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도 좋지.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이 없으니 이쪽도 찾아보고 저쪽도 찾아보고 하는 거죠.”

-이번 대선에서도 DJ가 변수로 등장했는데요. 그분은 통합신당보다는 후보 단일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DJ의 진의를 박지원 비서실장 등 주변에 물어봤어요. 대통합신당 포기한 거냐 했더니 그게 아니래요. 대통합신당 통해 오픈 프라이머리로 가는 게 최선이고, 그게 안 되면 후보 단일화하란 뜻이었대. 앞부분이 생략된 거야. 그럼 우리 생각과 다를 게 없어요. DJ가 독일 가신다는데 이거 저거 궁금해하신다고 해서 조만간 찾아뵐 거요.”

-범여권 의원들은 호남표를 의식해 다시 DJ에게 눈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DJ가 호남표 좌지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남분들이 영특한 분들이어서 대통합신당으로 합치면 대선이든, 총선이든 거기에 표를 줄 것이라고 확신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설혹 DJ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돕는다고 하면 호남 사람들 9할이 그쪽으로 안 갈 겁니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합니까.

“정규적인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정규 교육도 받고, 편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이제는 시대가 그쯤 된 거 같아요. ‘정규병(兵)’ 중에서 됐으면 좋겠단 거지.”

-그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들이 있나요.

“우리 쪽에선 불출마 선언한 두 분도 그랬고, 손학규ㆍ정동영ㆍ김근태ㆍ이해찬ㆍ한명숙….”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말씀 안 하시네요.

“유시민ㆍ김두관, 다들 한다는데. 많아요. 그러나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고….”

-정규병이라면 노 대통령과는 좀 차이가 있는 건가요.

“(잠시 말을 멈춘 뒤) DJ도 그렇게 정규병으로는 보이진 않거든. YS(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규병인지는 모르겠어. 어려운 시대에 국란을 극복하는 인물로선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젠 좀 더 국민 마음이 편해져야죠. 이 양반들은 거꾸로 국민이 그분들을 이해했어야 했잖아요. 앞으로는 지도자가 국민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정규병인가요.

“그건… 내가 잘 모르겠어.”

-이 정권의 창업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수감 생활도 하시고 했는데 노 대통령에게 서운하진 않으신가요.

“서운한 거 없어요. 다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해. 밥 짓는 사람 따로 있고, 밥 나르는 사람 따로 있고, 밥 잡수시는 분 따로 있는 거야. ‘킹 메이커’란 표현을 쓰는 게 어떨진 몰라도 나는 만들어내는 데 한 몫을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내가 할 일 했다고 생각하지요.”

-수감 중이실 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여러 번 면회를 오셨다던데요.

“내 기억으론 너댓번 오신 거 같은데? 그런데 이 전 총재가 자꾸 보자는데 좀 겸연쩍더라고. 내가 그분 두번 다 떨어뜨리는데 앞장선 사람 아닙니까. 한번은 내가 ‘이 선배,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우리가 잘해서 당선된 게 아니라 이 선배가 잘못해서 떨어진 거요’ 했지. 그랬더니 그분도 웃더라고. 이 전 총재는 사실 내가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고 DJ를 설득했는데 그때는 정치 안한다고 내숭 떠시더라고. 그런데 얼마 뒤에 보니까 한나라당에 가시던데.”

-올해로 정치 입문 30년이시죠. 감회가 어떠십니까.

“정치만 왜 이렇게 발전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정치를 반추해 보고, 뒤돌아 보면 그래도 속도는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걸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측면에서 보면 노태우 정권은 직접선거라는 민주적 방법을 다시 썼고요. 김영삼 정권도 3당 야합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군복에서 민간복으로 바뀐 것이고. 김대중 정권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뤘죠. 노무현 정권도 탈권위주의와 돈 안쓰는 깨끗한 정치를 한 데 있어서는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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