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민담에서 신데렐라는 ‘털가죽신(vair)’을 신고 있었다. 프랑스의 한 작가가 17세기 말 동화로 옮기면서 비슷한 발음의 ‘verre(유리)’라고 적었다. 그 이후 모든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게 됐다. 글자 하나 차이로 민담과 동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다.
그런가 하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핵심문장은 “Der Teufel soll das alles holen!”이다. 주인공 스스로 악마를 불러들여 일상적 삶으로부터 벗어난 벌레로 변신하기를 바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유명한 번역본에서는 “빌어먹을 것, 될 대로 되라지!”나, “이제 이런 생활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해” 등으로 돼 있다. 지긋지긋한 일상이 두드러진 대신, 악마의 존재는 지워버린 반쪽짜리 번역이란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이 모든 걸 악마가 가져갔으면!” 또는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가져가다오” 정도가 무난한 번역이라는 평이다.
고전은 인류의 보물창고.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좋은 번역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추천도서목록을 쏟아내는 어떤 대학과 독서단체에서도 정작 좋은 번역서를 추천하지 못한다. 실력과 양심과 용기가 아울러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는 책읽기보다 책 고르기가 더 어려울 때가 생긴다.
최근 출간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2』(교수신문 엮음, 생각의나무)와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2』(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지음, 창비)는 번역본 선택의 어려움을 속 시원히 뚫어준다.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2』는 노자의『도덕경』에서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까지, 24종 고전의 번역본 가운데 최선 또는 차선의 판본을 추천한다. 양대 감별기준은 번역의 정확성과 가독성(읽기 쉬운지 여부)이다. 구체적인 감별법으로는 원문을 완역했는지, 성실한 역주와 해설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지, 저자의 의도는 살리되 현대 독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번역인지, 원전의 독특한 표현을 얼마나 정확하게 옮겼는지 등이 제시됐다.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2』는 영미 고전문학 작품 가운데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35종의 완역본에 별표 평점을 매겼다. 그랬더니 잘 팔리는 책일수록 엉터리 번역이 많았다. 믿을 만한 번역서는 10권 중 1권꼴, 표절 번역서가 10권 중 4권꼴이었다. 예컨대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은 번역본 27종 대부분이 표절본이거나 윤문본이다. 특히 『천로역정』 『프랑켄슈타인』 『정글북』『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톰 아저씨의 오두막』 『톰소여의 모험』 『작은 아씨들』 등은 학자들이 양심을 걸고 추천할 만한 번역본이 하나도 없었다.
번역평가사업단이 밝힌 평가기준 역시 번역의 충실성과 가독성. 그 밖에 문장 차원의 누락이나 첨가, 역주 등 필요한 추가 정보 제공 여부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사업단은 “좋은 번역물은 시장에서 사라지고 오히려 엉터리 번역본의 표절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