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령화사회」를 사는 지혜(정년을 이긴다: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60세정년·촉탁사원제를 도입/평생닦은 노하우를 활용/당사자 거의가 높은 생산성으로 보답/연공제 임금부담… 능력급 전환이 숙제/20년째 「60세정년」유공/노후강좌 열어 진로지도
정년연장에 대한 견해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55세정년을 실시하는 기업이 70%(92년 2월 노동부집계)나 되는 현실에서 60세 정년을 실시해 온지 20년이 넘는 기업이 있어 주목을 끈다. 석유공사는 60년대부터 일찌감치 60세정년을 제도화해 놓고 있어 그곳의 직원들은 직장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타사의 정년이 60세가 아닌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게 우리회사 직원 대부분의 생각입니다. 60세 정년은 별무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입장이죠. 창립한지 30년이 돼 이제 정년을 맞는 직원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우리는 60세정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유공의 인사부장 정지웅씨(40)의 설명이다.
유공은 이외에도 퇴직을 앞둔 사원들을 관리하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정년을 3∼5년 앞둔 사원들이 정년후의 새로운 삶을 발전적으로 설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그린플랜이 바로 그것. 그린플랜은 80년대 중반 일본에서부터 실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나라 기업중에서 이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기업체에서도 고령직원이 늘어가고 있지만 종래의 기업들이 이들의 노후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했던게 사실입니다. 정년후의 생활은 아예 개인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왔죠. 그린플랜은 우리회사에서 20,30년을 근속한 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소박한 보답인 셈입니다.』 유공의 인력개발부장 강성길씨의 설명이다.
그린플랜은 2박3일의 프로그램으로 건강관리·저축·투자관리·생활법률 등의 교양강좌와 현재 자신의 삶을 진단하고 남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토록 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아직 40대인데 좀 답답한 심정이 되게한 시간이었음」 교육을 받은후 소감을 이렇게 밝힌 「청춘파」도 한사람 있기는 했지만 「퇴직후의 자화상을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퇴직 예정사원에게 인생설계에 대한 계속적인 교육이 필요함」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그린플랜에 참가했던 인천저유소의 김동철대리(57)는 『지금까지 막연한 생각으로 정년후의 생활을 그려보았지만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자극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회사측도 『89년부터 실시해온 이 제도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아 더욱 확대,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공의 60세 정년과 그린플랜은 드문 예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기업은 정년연장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그나마 소수의 기업이 「아무래도 55세정년은 이르다」는 인식아래 「정년후 재고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정년후 촉탁사원으로 재고용되는 예는 정년연장을 실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채택되어 왔다. 그런데 한국타이어에서는 최근 2∼3년동안 이 제도를 시범으로 실시해본 결과로 올해초부터는 이 제도를 「규정」으로 만들었다. 올 상반기엔 3명이 재고용되었다고 한다.
『저는 정년 10년전부터 정년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퇴직을 하더라도 다른 직장이라도 얻어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었지 일에서 손을 놓을 생각은 아직 없었지요. 그런데 정년 3개월을 앞두고 있는데 촉탁사원으로 일을 계속하지 않겠느냐고 회사측에서 제의해왔죠. 얼마나 반가운 심정이었는지 모릅니다』 90년 1월11일에 퇴직하고 1월15일 재입사하여 생산관리과 생산계획부에서 정년을 3년 넘겨 일하고 있는 이정제씨(57)는 전보다 더 활기찬 모습으로 생산현장에서 뛰고 있다. 『공연히 젊은 사람들의 길을 막고 서 있는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생각도 없지 않다』는게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회사측은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고 매우 조심스레 시작했지만 경영진과 직원 양쪽이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의 인사부 차장 민관식씨(40)는 『오히려 이 제도는 장기근속한 근로자의 노하우를 살려 인력손실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실시되었다』고 강조하고 『임금은 기존수준의 70∼80%에서 지급함으로써 연공급 임금체계의 불합리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밖에 각 기업들이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채택하고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일정기간동안 근속한 직원이 퇴직할 경우 직원의 자녀를 입사시킬 수 있도록 하는 대한통운의 대치채용제도도 그중의 하나. 또 퇴직한 직원들의 창업을 도와주거나 대리점을 경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도 선경그룹·대우그룹 등 여럿이다. 하지만 창업협력 등은 대개 임원사원인 경우에만 한정돼 실시되어 평사원에게는 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편이어서 별로 논의할 만한 수준은 못된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용대책연구관 어수봉박사(36)는 『60세 정년이 실시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재고용 등은 차선책으로 택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60세 정년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정년연장 추세가 미미한 것은 연공서열급의 임금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연공급에서 능력급으로 임금체계가 조정되지 않는한 정년연장은 논의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들은 윗사람을 「섬겨야 하는」유교적인 생활구조속에서 직장에서 고령직원은 인사적체의 요인이 되는 이외에 생산성을 낮추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우,60세 정년을 실시하는 기업이 84년에 이미 52%를 넘었다는 사실을 고령화추세와 함께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년연장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로 남는다.
□특별취재반
특집부
방인철차장
고혜련기자
배유현 〃
김창엽 〃
이은주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