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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좌파가 갈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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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동안 프랑스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나라였다. 지난 20년간 유권자 등록 숫자는 줄었고 선거일에 투표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의 수는 늘었다. 투표한 사람 중에서도 정권을 잡기에 부적합한 극우파나 극좌파를 찍은 사람이 점차 늘었다.

이런 경향은 올해 치러진 두 번의 선거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첫째, 프랑스가 다시 정치화하고 있다. 투표율은 유럽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 덕분에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매우 강력한 정통성을 갖게 됐다.

둘째,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약해졌다.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의 득표율은 2002년 18%에서 올해 10%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6명의 후보를 낸 극좌파는 완패했다. 영구혁명론을 신봉하는 트로츠키주의자 후보만이 4%를 얻었을 뿐이다. 지난 30년간 안정적으로 20%를 얻어 왔던 공산당을 포함한 여타 극좌파 후보의 득표율은 이번에 2% 미만에 그쳤다.

셋째, 우파와는 구별되는 중도파가 등장했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발전이다. 중도파 후보인 프랑수아 바이루는 1차 투표에서 2002년보다 세 배나 많은 17%를 득표했으나 3위에 그쳐 결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선거전에서 중도 바이루와 좌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간 후보 단일화 제안이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프랑스 정치에서 양자 간 동맹은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1차 투표에서 양자 중 더 많은 득표를 한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 결선에서 사르코지와 대결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둘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넷째 교훈은 사르코지와 관련된 것이다. 헝가리계 이민 2세인 그는 자라면서 프랑스적인 교육을 받았다. 영어는 잘하지 못한다. 그는 급진적인 자코뱅이나 강력한 민족주의에 기반한 보수적 드골파도 아니다. 실제로 드골파의 전통은 사르코지로서 끝났다. 사르코지는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에 정면으로 반대했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사르코지에게 가장 먼저 당선 축하전화를 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유럽에 새로운 동맹을 갖게 됐다. 사르코지는 시장의 효율성을 믿고 있으며,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그는 민족주의 성향의 프랑스 우파와 현대적인 보수주의의 화해에 기여할 것이다.

다섯째 교훈은 가장 심각한 것이다.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좌파는 대선에서 세 번 연속 실패했다. 돌이켜보면 사르코지의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성격과 우파의 약세를 감안하면 사회당이 이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당은 패배했다.

좌파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전략의 부재다. 사회당은 다른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혁 노선을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다. 반면 국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필요할 경우 중도파와 손잡고 시장경제의 국제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당의 이러한 경직성은 정권을 되찾는 데 장애물이 됐다. 또 사회당의 선거강령은 유럽, 나아가 세계적인 경향에 대한 무관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유권자들은 사회당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했다.

사회당은 지금 분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사회당은 당 강령을 현대화하지 않으면 쇠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이를 위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셸 로카르 전 프랑스 총리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