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윌리엄 맥닐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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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염병을 보건의료라는 좁은 관점이 아니라 일반 역사적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다양한 질병의 순환유형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저널』의 편집을 맡고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인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과의 윌리엄 맥닐 교수가 역사의 변두리에 위치한 전염병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또한 이 책이 가지는 역사적 설명력·통찰력의 배경이 된다.
그는 이 책보다 앞서 나온 『서구의 부흥』을 집필하기 위해 스페인 정복 사를 읽던 중 어떻게 6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스페인 법사들이 몇 백만 명이 넘는 중남미를 군사적으로만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으로 완전히 복속 시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떠한 인위적 행위로도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인간의 행위가 아닌 전염병이 주된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염병 가설이 스페인의 잉카문명 정복 사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 전 문명의 흥망을 해석할 수 있는 일반적 성격의 것임을 인식한 연구결과가 이 책인 셈이다.
잉카의 예와 마찬가지로 14세기 페스트와 19세기 콜레라의 대 유행은 무서운 보건 상 사건일 뿐 아니라 사회와 시대에 오랫동안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4, 15세기에 걸친 페스트의 유행으로 죽음의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된 유럽인들은 그 동안 통용되어 왔던 관습이나 규제, 특히 중세 합리주의 신학의 붕괴를 겪게 된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신비주의 사조의 유행을, 그 후로는 결국 중세기의 문화적 가치체계가 르네상스 이후의 세속화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으로 변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5대양 6대주 전역의 인간문화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친 전염병 관계사료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은 인류 역사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킨다.
번역은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허정 교수가 맡았다. <한울·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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