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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회복의 메커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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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기한 일이지만, 사람의 몸에는 '업그레이드' 기능이 있다. 스스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이 신의 창조물이라면, 신이야말로 최고의 프로그래머이고 오퍼레이터인 동시에 하드웨어 제작자다. 사람의 신체와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데, 여기에 업그레이드 서비스까지 평생에 걸쳐 제공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운동 능력은 훈련할수록 꾸준히 향상된다. 훈련에 따른 기능 향상, 즉 업그레이드 사양이 없었다면 스포츠에서의 기록 향상도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훈련을 해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그럼으로써 갖게 된 경쟁력을 무기로 다른 선수들과 겨룰 수 있기에 스포츠가 성립하는 것이다.

사람이 훈련을 통해 신체의 기능을 향상시키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 스포츠생리학에서 말하는 '초과회복(super compensation)'이다. 한계치에 이르는 훈련을 한 다음 일정 기간 휴식하면 체력 수준이 한동안 운동하기 전보다 높아진다. 이 상태를 초과회복 상태라고 한다. 초과회복 시기에 잘 맞추면 항상 향상된 수준의 운동을 할 수 있다.

보디빌더의 경우 훈련~휴식~초과회복의 과정을 반복해 지속적으로 훈련 강도를 높이고, 그럼으로써 근육량과 근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초과 회복을 위한 휴식기간은 훈련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훈련량이 적은 초보자는 훈련 뒤 48~72시간이 초과회복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훈련하면 좋다.

초과회복은 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람은 정신적.심리적으로도 초과회복을 경험한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낸 사람은 웬만한 고통에 굴복하지 않는다.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체력향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4박5일 수준의 '해병대 지옥훈련'이 나름대로 효과적인 이유도, 해병 출신 사나이들의 자부심이 남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동 업그레이드' 기능이 빠진 점이다. 사람은 컴퓨터와 달라 스스로 업그레이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절대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 극복하겠다는 결의와 실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초과회복 기간이 지나면 원래의 운동 기능으로 되돌아가고, 더 시간이 지나면 퇴보한다. 그러므로 초과회복 시기를 놓치지 않고 훈련해야 한다.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가운데 몇 명의 경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토트넘 핫스퍼)는 무릎 수술을 했다. 미국 프로야구의 박찬호(뉴욕 메츠)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최희섭(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은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극한의 시련 속에 던져졌다.

하지만 걱정할 일만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틀림없이 초과회복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테니까. 박지성이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더 강해지겠다는 말은 이미 업그레이드 버튼을 지그시 눌러 놓았다는 신호와 같다. 우리는 멀지 않은 시기에 더 가슴 벅찬 기쁨으로 이들의 경기를 볼 것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좌절과 성취는 하나의 드라마로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준다. 박세리와 박찬호로 인해 우리는 외환위기로 인한 빙하기를 살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모든 환경과 삶의 조건이 위험과 위기라는 두 단어로 갈음되는 고단한 시대지만 우리 안에서도 분명 초과회복의 메커니즘은 작동하고 있으리라. 용기를 내고 싶다. 우리는 틀림없이 더 강해질 것이다.

허진석 중앙SUNDAY 스포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