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제질서와 남북통일/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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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 실시됐던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이나라 국민의 68.7%가 유럽동맹조약에 찬성,유럽통합 의지를 재천명했다.
다음날 체코슬로바키아의 앞날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지도자는 오는 9월30일 국가해체작업에 돌입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에선 지금 이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두가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한편에선 민족주의에 기초한 분리·독립작업이 한창이다.
유럽공동체(EC)가 전자의 예라면 구소련과 유고,그리고 체코는 후자의 예가 된다.
독일의 통일과 동서냉전질서의 붕괴 이후 국제질서의 기본흐름으로 등장한 이러한 「시대정신」(Zeitgeist)을 학자들은 신국제주의와 신민족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조류는 비단 유럽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게 일반적 평가다.
피가 피를 부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사태나 지난번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사태가 신민족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면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환태평양공동체나 아시아공동체·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은 물론 걸프전이나 리우환경회의 등도 신국제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흐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는 통일이다.
통일이란 역사적 사명은 서로 상반된 현재의 두가지 흐름,즉 신국제주의와 신민족주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생각이다.
서로 다른 체제와 가치관을 가진 남북이 하나가 돼야한다는 점에선 신국제주의적 통합의 원리가 전부일 것 같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환경,에컨대 한반도의 통일을 달가워하지만은 않는 주변국들을 생각하면 결국 통일은 신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접근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가치가 동시에 적용되는 우리의 통일에 지금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과 분열은 좋은 연구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합의를 거쳐 평화적으로 갈라서는 체코의 분리배경과 분리과정은 거꾸로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역지사지의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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