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직장·가사·육아 … 안쓰러운 '2030 수퍼맨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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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앙일보에 가정의 달을 맞아 '4050 아버지'들의 애환을 다룬 특집기사가 실렸다. 권위를 중시하는 가정에서 자라 가장으로서 뼈빠지게 일했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는 권위적이라 싫다'며 배척하더란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 처한 이들을 '낀세대'라고 한단다. 아닌 게 아니라, 참 안됐다. 심하게 말해, 아버지가 무슨 껌도 아니고 단물 다 빠지고 나니 턱이 아파 이제 그만 씹겠다고 하는 격 아닌가.

그런데 정작 이들보다 더 안된 사람들이 있다. 한 세대 어린 '2030 아빠'들이다. 2030 아빠들이라고 고달픈 직장생활, 가족 부양에서 열외일까. 치열한 생존경쟁이 전 세계적 현상이 된 오늘날, 가장의 의무는 앞으로 훨씬 더 버거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애 잘 때 들어가 애 잘 때 나오는 생활"은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닷새 연속 술 마시고 토요일 새벽에 회사 상사와 골프 하러 나갈 때,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첫 아이를 갓 초등학교에 보낸 회사 동료의 푸념이다.

둘째아이를 갖지 않는 집을 보면 요새는 남자들이 완강하거나 소심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교육비와 노후도 걱정되지만 "지금도 힘든데, 아이가 하나 더 생기면 좋은 아빠 노릇을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라는 이유도 빠지지 않는 것이다. '좋은 아빠라는 걸 만방에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 '좋은 아빠가 되라'는 내적.시대적 압력. 2030 아빠들이 안쓰러운 진짜 이유다.

4050 아버지들이 한참 일할 당시에는 그래도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으로 '아빠노릇'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맞벌이가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돈을 버는 행위는 아내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마패'가 되지 못한다. 요즘 '아빠노릇'은 ①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집안일을 알아서 처리하면서 ② 아이와 자주 뛰어놀고 ③ 가족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는, 3박자를 고루 갖춰야 가능하다.

최근 한 여성지를 보니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대디계(Daddy系)'가 새롭게 떠오른다고 한다. '대디계' 아빠는 직장일뿐 아니라 가사.육아 등에도 적극적인 아빠라고 한다. 여자 입장에서 볼 때 기립박수라도 보내고싶은 트렌드일 수 있지만, 이런 아빠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의심스럽다. 어린이날이 낀 지난 주말, 내가 아는 한 젊은 아빠는 그 전날 장인상을 당한 직장상사 조문차 지방에 내려갔다 밤을 새운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아이들과 나들이를 했다. 지갑을 털어 요즘 어린이날 선물의 '지존'이라는 N사의 게임기도 준비했다. 수퍼맨의 비애다. 수퍼우먼이 힘든 만큼 수퍼맨도 힘들다. 가정의 달, "좋은 아빠, 좋은 남편에 대한 여자들의 눈이 턱없이 높다"는 2030 아빠들의 한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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