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부부작가 … 부부가 함께하는 삶 부러우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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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라는 길을 ‘따로 또 같이’가는 부부작가들. 이들은 "우리는 경쟁자이기 이전에 동반자"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원성원·이배경 부부, 문봉선·강미선(앉아있는 사람) 부부. 이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김상선 기자]

남편과 아내의 직업이 같다면 서로 더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어 좋을까. 아니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피곤할까. 요즘 미술계를 들여다보면 부부작가들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일례로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관장 박강자)에서 13일까지 열리는 'It takes two to tango'전에는 7쌍의 부부작가가 참여한다. 이 중 문봉선.강미선 부부와 이배경.원성원 부부를 만났다. 각각 결혼 22년째와 10년째를 맞는 이들에게서 부부의 '같은 길, 다른 삶'을 들어봤다.

# 이해하며 비판=평생 친구

'부부는 닮는다'는데, 문봉선(46).강미선(46) 부부가 딱 그렇다.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생김새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홍익대 동양화과 동기인 데다 같은 학교 대학원도 같은 해에 마쳤다. 우리 화단의 대표적 등용문인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는 점도 같다. 남편의 수상은 1987년, 아내는 98년이다. 11년 차이다. 똑같이 출발선에 섰지만 아무래도 아내는 결혼 후 육아 때문에 6년여의 공백기를 보내야 했던 이유가 클 것이다.

"화가로서 남편한테 뒤처진다는 초조함, 그런 건 없었어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먼저 마무리 지은 뒤 작품활동을 해도 늦지 않다, 일단은 남편이 좋은 작품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자고 느긋하게 맘을 먹었거든요."

남편은 그런 고마운 아내가 작가로서의 열정을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작가로서 자극이 되는 경험을 하면 함께 나누려 애썼다. 한 예가 중국행. 인천대 교수로 재직하던 문씨는 2001년 안식년을 맞아 중국 난징예술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1년을 지내보니 중국 미술계가 정말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변하더군요. '이런 역동적인 변화의 기운을 아내도 느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두 아들을 불러왔지요." 이를 계기로 강씨는 활동영역을 넓혀 2003년 베이징 국제예원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둘 다 화단의 어엿한 중진으로 자리 잡은 만큼, 서로에게 미묘한 경쟁의식도 느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림 그리는 건 올림픽이 아니다'라고 답해요. 저는 제 세계가, 남편은 남편의 세계가 있는 거니까요."

"경쟁자보다는 동반자로서 얻는 혜택이 훨씬 크지요. 그 어느 직업보다 화가는 배우자의 이해와 배려가 필수적입니다. 배고픈 직업인 데다 스케치한다고 도시락 싸서 하루종일 산을 쏘다니다 술에 취해 들어오고, 지방에 답사가서 며칠씩 연락 끊기고…. 어떤 아내가 20년 넘게 그런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겠습니까."

학생 시절부터 비롯된 인연, "서로에게 가장 가혹하면서도 서로 가장 인정하는 비평가"가 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큰아들도 올해 문씨가 교수로 재직 중인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 '화가 집안'의 대가 이어지고 있다.

# 다른 만큼 인정=평등부부

서로 '개'와 '고양이'라 부르는 부부. 실제로 개와 고양이의 특성을 지닌 부부. 그런데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기는커녕 의좋게 살아가는 부부. 이배경(39).원성원(35) 커플이다. 올해로 결혼 10년째. 그러나 실제로 한 이불 덮고 잔 기간은 5년이 채 안 된다. 중앙대 조소과 선.후배로 결혼한 뒤 남편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로, 아내는 뒤셀도르프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쾰른 미디어예술대학에서 다시 만났지만, 이후 파리로 유학을 연장한 아내 때문에 남편은 1년 먼저 귀국해 혼자 지냈다.

지금도 얼굴 보는 횟수는 1주일에 2~3회 정도. 창동스튜디오에 입주했던 남편은 최근 혼자 쓰는 작업실을 얻었고, 아내는 고양스튜디오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없다. 오랜 숙고 끝에 육아와 작가생활을 병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영상.미디어 작업을 하는 남편과 사진 작업을 주로 하는 아내는 성격도, 작업 스타일도 판이하다. 스스로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다. "저희는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 절대로 비평하지 않아요. 공동작업을 한 적도, 앞으로 할 의향도 없어요. 함께 있을 때도 작업 얘기는 절대 화제에 올리지 않아요.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상대의 영역을 인정하는 거죠."

버는 돈도 각자 알아서 쓴다. 꾼 돈은 갚는 걸 원칙으로 한다. 보통 부부는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결혼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고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죠." 명쾌한 대답이다. 쿨한 척하면서도 막상 실전에서 삐걱대는 부부들이 흔한 요즘, 이들이야말로 '평등부부'로 가는 티켓을 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선민 기자<murphy@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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