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과 IAEA분위기/배명복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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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운운한 정주영국민당대표의 발언이 국내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국민의 관심속에 열리고 있는 IAEA이사회 현장에서 정 대표의 발언파문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정 대표의 말대로 IAEA가 미국의 주도하에 있다면 지금 이곳 IAEA이사회 회의장에 감돌고 있는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는 과연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우선 가져보게 된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미 북한이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생산,원폭생산이 임박했다는 자체분석까지 내놓은 바 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IAEA가 실시하는 사찰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남북한간의 상호특별사찰 등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북한에 대한 압력의 고삐를 절대 늦춰서는 안된다는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곳의 분위기는 북한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비록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북한이 IAEA의 사찰을 수용,모든 것을 있는대로 다 보여주겠다는 성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상 좀더 지켜보자는게 일반적 분위기다. 북한에 대해 강한 의혹을 갖고 있는 미국이 IAEA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이러한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 대표의 발언에 대한 일부의 반박대로,그렇다고 IAEA가 스웨덴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 또한 물론 아니다. 블릭스사무총장이 스웨덴출신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지난 81년부터 벌써 12년째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의 입김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립적 자세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북한에 대한 IAEA의 이러한 분위기는 물론 유동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사찰이나 앞으로 실시될 남북간 상호사찰 결과 북한의 신고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질 경우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말마따나 「미국의 주도하에 있는」 IAEA가 그때까지도 태평한(?) 자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기능이 비록 미심쩍어 보일지라도 IAEA의 노력을 지켜보는게 좋을 듯하다.<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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