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문제 본격논의 급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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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한 고교생의 장기이식시술은 다시 한번 미결상태의 「뇌사문제」에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 중앙병원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한 고교생의 각막과 신장을 적출해 불치병을 앓고 있던 4명에게 이식시킴으로써 새로운 삶을 찾아주었다. 물론 이 시술이 뇌사상태에 빠져 회생이 불능한 한 인체의 장기를 이용해 4명이나 되는 불치병환자의 삶을 온전하게 보전하도록 한 것은 결과적으로 실용과 효율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담당의료진은 의학협회가 규정한 뇌사판정기준을 엄격히 적용했고,자격있는 전문의사들에 의해 시술됐으므로 의학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의료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체가 아무리 회생불가능한 상태라해도 마치 용도폐기된 기계에서 쓸만한 부속품을 떼어내 다른 기계에 붙여쓰듯 하는데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는게 사실이다. 인간은 단순한 생물체가 아니라 윤리적·종교적,또는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뇌사와 장기이식문제에 관한 우리사회의 합의를 도출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첨단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 장기이식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인데 그때마다 법적·윤리적 시비거리가 된다면 법치국가로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선 법적으로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느냐가 근본적인 문제다. 현재 우리의 통념과 관행은 심장사만을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뇌사판정에 의한 장기이식은 법률적으로는 「살인」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뇌사에 의한 장기이식시술 의사들이 일단은 형사입건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실제로는 처벌받지 않고 넘어간 것은 법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뇌사의 법적 인정에 이르기까지는 사회적 합의에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우선 이를 위한 논의부터 활발히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적장치의 미비에도 불구하고 의학계에서는 뇌사판정을 하고 장기이식시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에 필요한 절차나 과정에 대한 일정한 장치라도 우선 마련하는 것이 급할 것 같다.
이번 고교생처럼 사고를 당한 사람이 평소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적이 없을 경우 가족이 마음대로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결정할 수 있는지,그것이 합당한 일인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밖에도 장기이식 수혜자의 우선순위의 결정,금전거래의 금지,위계에 의한 사고유발 가능성 등 장기이식에 따른 여러가지 안전장치의 마련 등이 서둘러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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