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 한미 재계회의/오체영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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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5∼16일 이틀동안 서울에서 열린 제5차 한미재계회의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비중있는 경제인들이 모여 양국 기업간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 근본취지였다. 그러나 우리측이 한미기업의 제3국 공동진출 등 순수한 경제협력방안에 대해 초점을 둔 반면 미측 기업인들은 줄곧 우리나라의 금융시장개방 확대·지적재산권보호 강화 등 사실상 정부간의 문제에 대해 집중거론,마치 미 정부 대변인인 듯한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물론 『한국은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고 지적재산권도 제대로 보호되지 않아 한국에 투자하고 기술이전을 하고싶어도 어렵다』는 미측의 주장은 기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 이해가 가지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 경제인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언제 이루어지느냐』며 내정간섭적인 발언을 할때는 지나친 감이 들었다.
더구나 한미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초청연설에서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는 많이 이룩했지만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되지 않았다』『현 정부는 8개월밖에 남지않아 어렵지만 차기정부는 경제규제완화와 개방확대를 꼭 실현해야 한다』는 등의 외교관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노골적인」 발언을 한 것도 어색한 인상을 남겼다. 국제화시대에서 개방이 필연적인 흐름이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실천시기와 방법은 다소 차이가 날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것이나 시장개방을 강조하는 미국이 자신들의 섬유·서비스산업은 다른 나라들의 다자간협정체결 요구에도 불구하고 예외조항(WAIVER)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금리·환율정책은 국가경제의 골간으로 기본적으로는 그나라 정부가 결정하는 정책사안이다. 남들이 「감 놓아라 밤 놓아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도 국제흐름에 따라 물가·국제수지 등 우리경제의 종합적인 여건을 감안해 지난해 8월 「4단계 금리자유화 기본계획」과 올해초 「오는 97년까지 3단계로 금융시장 개방폭을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금융자율화 및 개방계획」을 세워 1단계는 시행중이다. 미국에서 최근 나온 2개의 보고서도 우리를 「환율조작국」에서 해제했다.
이번 한미재계회의를 지켜보면서 「미국측이 너무 조급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느낀 것은 비단 기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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