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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법/“외국인용의자 납치는 합법”/피해국 법정서 심판받아 마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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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 마약요원 살해혐의/멕시코인 1,2심깨고 구금
【워싱턴 AP·AFP=연합】 미 연방 대법원은 15일 미국 정부가 해당국의 반대에도 불구,다른 나라로부터 범죄 용의자를 납치한 뒤 미국 법정에 기소할 수 있다고 판결,앞으로 약소국의 주권문제 등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상고를 받아들인 이번 판결은 미국 정부가 범인인도 협정을 체결한 멕시코 정부에 범인인도 요청을 하지 않은채 멕시코인을 강제 납치,미국 법정에 기소한 것은 불법이라며 피고인을 본국으로 되돌려보낼 것을 명령한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 및 제9순회법원(항소법원) 등 하급심 판결을 깬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미 정부 소속 마약요원 등을 고문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멕시코 의사 움베르토 알바레스­마카인 사건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결하고 미­멕시코 양국간의 범인인도 협정으로 인해 미 정부관리들이 알바레스­마카인을 기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날 찬성의견을 낸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피고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납치행위는 충격적이며 일반적인 국제법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미­멕시코간의 범인인도협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존 폴스티븐스대법관은 이를 『위험천만한 결정』이라면서 『연방 대법원의 오늘 결정은 문명세계의 법정 대부분을 엄청난 혼란속에 빠뜨릴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피고인 알바레스­마카인은 지난 90년 멕시코의 자기 사무실에서 미국정부의 마약요원 등을 살해한 혐의로 미국 관리들에게 강제 납치돼 기소됐다.
◎해당국 주권무시한 강대국 횡포/리비아 팬암기 폭파범 표적 시사(해설)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 정부에 대해 범죄 용의자가 체재하고 있는 국가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용의자를 현지에서 납치해 송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주권존중원칙을 무시한 강대국의 횡포라고 비판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국제법 전문변호사인 파리의 아르노 클라스펠트씨는 『용의자를 마음대로 납치하려 한다면 국가간의 범인인도협정은 어디에다 쓸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스라엘 비빌경찰인 모사드의 총책임자를 지낸 이서 하렐은 미 연방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한마디로 『미국이 필요해서 하면 모든 것이 적법하고 다른 나라들이 필요해서 할 경우는 불법이라는 이야기』라면서 『미국의 필요를 위해 나온 혁명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하렐은 자신의 지휘하에 있었던 모사드요원들이 지난 60년대초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던 나치 독일의 주요 전범 아돌프 아이하만을 납치했을 당시 미국 전문가들이 이를 격렬히 비난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칠레로 도피해있던중 지난 86년 사망한 전 나치요원 발터 라우프의 변호인을 맡았던 엔리크 쉐펠러변호사는 이 문제가 『이미 국제법 전문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사안으로 모든 국제법 전문가들은 미 연망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규탄하고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도망자의 죄질 문제를 떠나서 우선 도망자가 도피해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며 만약 힘있는 국가가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허용될 경우 국가간의 범인인도조약들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미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법리상의 논란과 함께 현실적으로 리비아가 인도를 거부하고 있는 지난 88년의 팬암103편 폭파범들에 대해 미국 정부가 납치 등의 강제력을 발동해 사법권을 행사하려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 지난 85년 한 미국인 승객을 사살한 혐의로 이탈리아 법정에서 궐석재판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불 압바스 역시 미 수사기관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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