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하는 마음부터 배우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PC통신을 통해 욕설을 들은 여중생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했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우리의 「컴퓨터문화」의 현주소가 어떠한가를 점검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컴퓨터 보급이 2백만대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우리의 수준은 아직 초기단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보급률만 낮은 것이 아니라 인지도도 낮아 그냥 신기한 첨단기계,또는 만능 장난감이라는 호기심으로 컴퓨터를 대하게 된다.
특히 이번 여중생을 자살로 몰아간 PC통신은 이용자의 70%이상이 청소년으로 구성된 전자 게시판(BBS)이어서 이용률도 높고 영향력도 강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청소년 문화로 꼽히는 컴퓨터 놀이인 셈이다. 모든 문명의 이기가 다 그렇듯,청소년들에게 있어 이 전자 게시판은 토론의 광장도 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음란 만화를 송출시키거나 이번 사례처럼 무차별 욕설을 퍼붓는 유해한 기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끼리의 사설 통신망을 조직하고 모뎀을 장치하고 전화선에만 연결시키면 통신망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누가 어디서 송출하는지 식별하기도 어렵고 송출된 내용을 중간에 지워버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컴퓨터에 대해 성인보다는 청소년이 접근하기가 쉽고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정신적,또는 문화적 수용 준비없이 단순히 오락의 기능으로 처음부터 접근했기 때문에 컴퓨터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빠져들기도 쉬운 법이다.
시내 여러곳에 컴퓨터학원이 있고 학교와 직장에서 컴퓨터 조작법을 가르치지만 컴퓨터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 자녀들을 위해 컴퓨터를 사주는 데는 부모들이 인색하지 않지만 컴퓨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무엇을 설명해줄 능력이 부모에겐 없다.
컴퓨터하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인간의 마음과 두뇌,그리고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정보처리 체계라고 규정한다. 단순히 신기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두뇌가 숨쉬고 살아있는 정보수단인 것이다. 여기에 무차별 욕설을 보내고 음란만화를 송출한다면 이를 제재하고 이용자를 보호할 법규의 제정이 마땅히 따라야 한다.
아직 보급의 초기단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여중생 자살사건이 선의의 청소년들의 컴퓨터 이용을 행여 저지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건전한 청소년들의 컴퓨터문화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법적 장치와 아울러 보급초기부터 컴퓨터 문화와 마음을 가르쳐 주는 배려가 학교와 직장에서 이뤄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