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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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삶이 당신을 슬프게 하더라도 웃음을 잃지 마세요. 웃으면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으니까요."

체코가 낳은 세계적 영화감독 이리 멘젤(69.사진)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한국 관객과 만났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의 사회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씨네토크'를 통해서다. 이 자리에선 멘젤 감독의 대표작 '가까이서 본 기차'와 '줄 위의 종달새'도 차례로 상영됐다.

멘젤 감독이 28세 때 만든 데뷔작 '가까이서…'는 196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 나치 독일 점령 당시 체코가 겪었던 정치적 어려움과 20대 초반 '햇병아리' 역무원 청년의 서툰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권위주의 체제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 자유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줄 위의…'는 69년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분위기에서 완성됐다. 그러나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워 민주화 시위를 강제 진압하면서 20년간 상영이 금지됐다. 뒤늦게 90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공개돼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유럽 영화계에서 멘젤 감독은 사회 체제의 모순에 의한 비극을 웃음과 풍자로 접근하는 '희비극'의 대가로 명성이 높다. 그는 "사람은 웃음없이 살 수 없다. 웃지 않는 사람은 곧 희망을 잃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많이 배웠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상영된 두 작품은 모두 보흐밀 흐라발이란 체코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멘젤 감독은 "원작이 워낙 좋아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려 했다"며 "개인적으로도 작가와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그는 "젊은 관객들이 내 영화처럼 오래된 영화를 좋아해 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줄 위의…'에선 한국 전쟁과 부산도 언급된다. 이에 대해선 "원작의 배경이 1950년이고, 당시 체코의 여러 매체에서 한국 전쟁에 대한 소식을 다뤘다"며 "부산과 발음이 비슷한 체코어로 '푸사'가 있는데 입술 또는 입맞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프라하 영화학교(FAMU) 출신으로 올해로 영화인생 42년을 맞은 그는 일흔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신작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는 올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상을 받았다.

'가까이서…'와 '줄 위의…'는 각각 10일과 17일 씨네큐브에서 개봉하며, 또 다른 대표작 '거지의 오페라'는 24일부터 같은 극장에서 일반 관객을 만난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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