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정치 축제 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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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5일 밤. 언제나처럼 파리 라탱 거리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빨간 장미꽃을 든 여대생 다섯 명이 팔짱을 낀 채 춤추듯 몸을 흔들며 다가왔다. "세골렌을 찍어요. 세골렌" 하며 노래를 불렀다. 당원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꽃을 모두 나눠준 학생에게 말을 걸어봤다. 그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루아얄이 사르코지에 밀린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장미 몇 송이 사서 나왔다"고 했다. 잠시 뒤 파란색 가발을 쓰고 파란색 풍선을 든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사르코지를 지지하는 우파 대중운동연합(UMP) 당원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겼다"를 연호했다. 흡사 축구장 서포터 같았다. 양측은 1m 남짓 거리를 두고 서서 경쟁하듯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주변 카페의 손님들이며 외국인 관광객까지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이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유 중의 하나는 성공적인 국민 참여에 있다. 높은 투표율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르코지를 위해 파란색 셔츠를 사 입었고, 돈 한 푼 안 받고도 루아얄을 위해 장미꽃을 사들었다.

후보자 간의 뚜렷한 개성이 큰 몫을 했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에 영화배우 못지않은 팬클럽을 만들어냈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 수 있었다. 최대한 매너를 지킨 각 진영의 선거운동도 막판까지 흥을 깨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루아얄은 패배 직후 웃음 가득한 얼굴로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고 했다. 사르코지도 "마담 루아얄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위로를 잊지 않았다.

이제 곧 시작되는 우리 대통령 선거전도 눈살 찌푸려지는 싸움판이 아닌 모두가 즐기는 축제 마당이 됐으면 한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