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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CF에서 스타 볼 일 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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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 회사가 광고 모델을 탤런트 김현주에서 일반인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한화건설 신완철 상무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을 기용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광고에서 스타급 모델, 즉 빅 모델이 배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림산업도 얼마 전 채시라 대신 무명 모델과 일반인을 기용했다. 동물 비버를 캐릭터 모델로 사용하고 있는 광고(대동 다숲 아파트)도 있다.

스타들의 파워가 갑자기 떨어진 걸까. 물론 그건 아니다.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게 광고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광고도 넘치고, 스타도 넘치는데 정작 '물건'은 기억나지 않는 현상에 대한 '전략 수정'인 셈이다.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이정은 차장은 "웬만한 여자 연예인은 모두 아파트 광고를 꿰차고 있어 브랜드와 모델이 거의 매치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일반인이나 무명모델을 쓰는 게 차별화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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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스타 어디로 갔나=요즘 광고계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 광고에서도 빅 모델은 찾아보기 힘들다. KT 와이브로 광고의 경우 업로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의 사물과 사람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KT 박혜정(디자인 경영실장)상무는 "IT업계 신규사업의 경우 빅 모델을 기용한 광고로 초반 인지도를 높이는 게 보통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모델보다 광고 자체의 아이디어와 제품 특성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스타들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영상통화, 글로벌 로밍의 기능을 표현하는 KTF SHOW 광고도 10여 편을 동시에 내놓았지만 모델 중 알 만한 사람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뿐이다. 주진모.한석규 등을 기용했던 LG텔레콤은 일본의 마네킹 애니메이션 '푸콘 가족'의 캐릭터를 모델로 사용해 화제가 됐다. 현빈.에릭 등을 캐스팅했던 메가패스는 지난해부터 고양이 캐릭터인 '메가캣'을 모델로 내세웠다.

20여 년간 동서식품 프리마 광고모델을 했던 안성기.이현미씨도 최근 광고에서 하차했다. 동서식품은 "제품 이미지를 보다 젊게 가져가고, 소비자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신인 모델로 바꿨다"고 밝혔다. 맥심 라떼디토 광고도 무명 모델들이 난처한 상황을 재치있게 피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병헌 등을 기용했던 던킨도너츠도 외국인 모델들이 출연하는 코믹한 상황설정 광고로 시선을 끌고 있다.

배용준.이영애.장동건.이나영 등 빅 스타들의 경연장이었던 카드사 광고도 사정은 엇비슷하다."아버지는 말하셨지~"로 시작하는 CM송으로 화제를 모은 현대카드 광고는 최근 외국인 모델이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편, 블록 완구를 사용한 '레고 블록'편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여자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화장품 광고에서도 모델이 등장하지 않고, 제품만을 강조한 광고(CJ엔프라니)가 등장했다.

◆빅 모델은 제품 죽이는 흡혈귀?=요즘 광고업계에선 '크리에이티브 뱀파이어' 경계론이 대세다. 스타들이 뱀파이어(흡혈귀)처럼 광고 메시지를 빨아들여 막상 소비자는 모델만 기억하고 정작 중요한 브랜드 이미지나 광고 메시지는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광고대행사 TBWA의 이상규 부장은 "광고에서 빅 모델에 의존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며 "빅 모델에 의존하다 보니 특정 모델의 겹치기 출연도 심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영애의 하루' '다니엘 헤니의 하루'는 이 같은 일부 모델의 광고 겹치기 출연을 비꼬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란 것이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광고에 활용할 수 있는 모델군이 많지 않다. 더욱이 툭하면 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져나와 제품 이미지까지 동반 추락하는 일이 잦다"고 꼬집었다.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 열풍도 광고계의 지형도를 크게 흔들고 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UCC가 광고를 보는 소비자의 시각을 바꿔놓고 있다는 것. 빅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보다 소비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거나, 아이디어가 기발한 광고에 더욱 많은 시선이 쏠린다는 분석이다. 비와 이효리를 기용했던 '비타 500'은 마치 10대 아이들이 만든 것 같은 거친 형식의 UCC 광고로 화제가 됐다.

광고업계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당장 빅 모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뛰어난, 형식이 특출한 광고다운 광고가 빛을 볼 기회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평론가 김홍탁(제일기획 수석국장)씨는 "외국에서는 빅 모델을 써도 아이디어가 설정된 구조 속에서 모델의 역할이 결정된다. 반면 국내 광고에서는 이른바 '뜨는' 연예인의 이미지와 후광에만 업혀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의 빅 모델 약세 현상은 광고시장의 정상화로 이해하면 된다.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가 뛰어난 '깨어 있는' 광고가 더욱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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