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천국 파리… 「개똥과 전쟁」선포(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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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소차로는 역부족… 벌금 등 단속강화
프랑스에 살다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프랑스 시민들의 기묘한 발상에 가끔씩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주에 있었던 영국여왕의 기마행렬만 해도 그렇다. 국빈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외국원수에 대한 전통적 의전관례에 따라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3백마리의 말이 이끄는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상젤리제행차에 나섰다. 여왕이 탄 무개차의 앞뒤로 기마대가 포진하고 그뒤에는 1백여대의 경찰모터케이드가 따라붙는 장대한 행렬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백미는 의전행렬의 맨후미를 장식한 세대의 녹색 청소차였다.
보통 개가 배설한 오물을 치우는데 쓰는 파리시청 소속 오물제거차들이 앞서가는 3백마리의 말들이 상젤리제에 내지른 오물을 말끔히 치우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국빈행차에 오물청소차를 따라붙인다는 불경(?)스런 발상은 파리시청측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개똥과의 전쟁」을 선포한 마당에 국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파리시의 주장이 결국 관철됐다는 후문이다.
파리를 여행해본 사람들 가운데는 거리에 널린 개의 배설물에 발을 잘못 디뎌 모처럼의 여행기분을 잡친 사람도 있겠지만 파리는 그야말로 개의 천국이다.
파리시는 연간 5천만프랑(약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의 배설물을 빨아들이고 물로 씻어내는 특수차 4백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파리 시내에 있는 20만마리의 개들이 쏟아내는 하루 15∼20톤의 배설물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다.
고심끝에 파리시는 지난 5월 개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해진 장소가 아닌 곳에 함부로 실례를 범하는 견공들의 주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기로 한 것.
이를 위해 파리시는 50명의 전담직원을 시내 곳곳에 배치,단속에 나서고 있다. 버릇 없는 개를 둔 주인들은 꼼짝없이 건당 3백∼6백프랑(4만2천∼8만4천원)의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물론 개주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의 열렬한 동물보호운동가인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회장으로 있는 BB클럽은 최근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에게 공식서한을 보내 『시당국이 개의 배설시설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채 벌금부터 물리는 것은 관의 횡포』라고 공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왕행차에 오물청소차를 따라 붙일 정도로 강력하게 개똥과의 전쟁을 선포한 파리시청의 의지를 볼때 앞으로 파리를 여행하면서 개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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