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노 정부 조세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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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2일 한덕수 경제부총리(현 국무총리)는 "조세제도 선진화를 위해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금의 틀을 다시 짜겠다는 중대 발표였다. 정부 차원의 조세개혁특별위원회가 서둘러 구성되고 재정경제부 안에도 조세개혁기획단이 급조됐다. 주식 양도차익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 개편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이듬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조세개혁에 탄력이 붙었다. 2030년까지 필요한 1100조원의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발등의 불이었다.

그러나 1년5개월이 지나면서 조세개혁이 좌초할 위기다. 조세개혁특위는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재경부의 기획단도 기존 조직에 흡수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올 3월 발표 예정이었던 최종 개혁방안도 흐지부지됐다. 이에 따라 비전 2030은 '장밋빛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초대 조세개혁특위위원장이었던 곽태원 서강대 교수는 "정치논리 때문에 발표를 계속 미루는 바람에 정책 타이밍을 놓쳤다"며 "비전 2030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 외풍에 휘둘린 조세개혁=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은 비전 2030의 자금조달 계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30년까지 복지.교육.국방에 쓸 돈을 마련하자면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 개혁 방안으로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 파악 제고 ▶학원비.아파트관리비에 부가세 부과 ▶주세.담배세 인상 등이 검토됐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이 증세안은 선거에 악재라며 제동을 걸었다.

2006년 하반기에 논의가 재개됐으나 개혁 범위는 좁아졌다. 권오규 부총리는 "2010년까지 재정계획만 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여당이 없어지자 발표 자체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유일호 특위위원장은 "1월 말 검토를 마무리해 정부에 최종안을 보냈으나 아무 연락이 없다"며 "지난해 말로 잡힌 특위 시한이 6월 말로 연기됐지만 특위 활동은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 조세개혁 물 건너가나=재경부는 조세개혁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린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증세 논란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검토되는 안에도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목을 만드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2010년까지 중기 재정계획을 위해 굳이 세율 조정이나 세목 신설을 통한 증세는 필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경민.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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