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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무기개발 차단에 초점/정부 대북 공식논평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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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찰결과 토대로 외교압력 계속/경수로대체 미등 기술지원 유도
국제원자력기구의 대북 임시사찰이 상당히 실효성있게 진행되는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새롭게 조정될 계기를 맞게됐다.
그동안 남측이 요구해온 북한의 핵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핵안전협정을 서명하고 ▲그에 의한 사찰을 받는 것과 ▲비핵화공동선언에 의해 핵재처리시설을 포기하고 상호사찰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제원자력기구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라는 두가지 궤도위에서 추진돼온 북한 핵문제 해결노력은 비핵화의 이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비핵화선언의 이행에서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로 상호사찰은 시한을 요하는 긴급한 사안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남측이 의혹을 갖고 있던 영변핵시설이 공개됐고,북한은 미신고시설이라도 국제원자력기구가 원하면 어디든 보여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번에 사찰대상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해 신고하지 않은 동위원소실험실도 공개,국제원자력기구는 이를 북한의 협조적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상호사찰은 북한이 특정시설을 신고하지 않을때 이를 강제로 볼 수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북한 태도로 보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로 상호사찰이 당장 긴급하다고 압력을 넣을 구실이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상황분석에 의해 이제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개발노력을 근본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현재 건설중인 재처리시설을 중단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가 12일 공식논평을 통해 북한의 재처리시설이 비핵화선언에 위배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건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경제사정상 가장 시급한 미국·일본의 대북 관계개선을 비핵화선언의 이행에 연계시켜 외교적인 압력을 늦추지 않을 작정이다. 또 유럽의 협조도 계속 유지토록 노력키로 했다.
정부는 이 외교적 압력의 공감대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계속 현재의 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으나 이번 사찰의 결과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6월을 시한으로 북측과 핵협상을 벌여온 것은 영변의 「핵재처리시설」이 6월이면 완공될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정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찰로 밝혀진 북한의 재처리시설은 건물은 80% 정도의 공정을 거쳤으나 내부장비는 40% 정도밖에 진척이 안돼 있었고,그나마 주요장비는 없는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돼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문가들이 확인한 북한의 플루토늄 분리수준은 『미비하고,구식이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고 보면 이같은 시한에 상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정기사찰때 설치하는 감시장비와 봉인을 북한이 이번 임시사찰에서 설치토록 허용,앞으로는 모든 핵물질의 이동이 철저한 감시하에 놓이게 됐다.
김재섭 외무부국제기구국장은 ▲플루토늄 추출량이 신고량과 일치하는가와 ▲「방사화학실험실」외에 별도의 시험용 플루토늄 추출시설이 있는가 하는 문제만 해결되면 국제원자력기구와의 의무 이행은 만족스럽게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별도로 은닉한 플루토늄이 없다면 추출량은 극히 미량이어서 폭탄제조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이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국제원자력기구가 임시사찰에서 수거한 표본들을 분석하면 확인할 수 있어 이제 분석을 위한 시간만 남았을 뿐이다.
이 분석결과 신고내용이 허위로 밝혀질 경우에는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국제압력에 직면하게 되므로 현재로서는 의혹이 해소될걸로 해석하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따라서 기존의 외교적 포위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채찍」보다 「당근」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흑연감속·가스냉각방식의 원자로가 안전성도 없고 경제성도 없다는 점을 지적,이를 경수로로 대체하는 것을 지원한다는 입장을 미국측과 협의를 마쳤다. 특히 경수로방식은 저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쓰기 때문에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등 극히 일부 국가로부터 연료를 수입해야 하고,따라서 핵물질의 이동을 감시하기도 쉬워진다. 그런데 재처리시설의 포기를 전제로한 경수로방식 전환에는 북한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에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재처리시설 포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낳고 있다.
정부는 또 장기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감시할 남북상호사찰 이행을 위해 사찰 규정을 만드는데도 상당한 융통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포기한다면 남북이 서로 체면을 잃지않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도 실효성있는 사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남측으로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로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시한에 쫓기던 이제까지의 협상과는 달리 상당히 신축성있는 선택의 폭과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으며 주춤거리던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의혹을 표명하며 강경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측의 압력이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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