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도 "벗기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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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연극에서도 벗기기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연초부터 『침대소동』 『퍼포먼서와 콜걸』 등이 작품의 내용보다 전라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장기연장공연에 들어가게 되자 새로 선보이는 작품들도 약방의 감초처럼 벗기기를 삽입하고 있다.
최근 소극장무대에 오른 『런던양아치』, 6개월째 히트하고있는 『불 좀 꺼주세요』, 김지숙 주연의 화제작 『당신의 침묵』 등에서도 전라가 나오거나 강렬한 베드신을 관객들 코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절름발이 영어를 포함하고 있는 『퍼포먼서와 콜걸』(퍼포머가 맞다)은 무의미한 대사를 나열하다 등장하는 남녀가 어두운 조명에서 전라의 몸으로 등장한다. 때로 조명의 실수로 전라의 모습이 낯뜨겁게 드러나기도 한다는 소문이 작품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관객들을 자극하고 있다.
호모들의 섹스신이 치부를 드러내며 나오는 『런던양아치』의 경우 제목이나(원제는 『Fashion』) 내용은 우리정서에 맞도록 각색을 많이 하면서 유독 동성애부분 등은 전혀 각색하지 않고 원작에 충실하려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예술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89년 공연법의 개정으로 아무런 사전심의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성적묘사와 표현을 해온 연극작품들이 최근에는 야한 언어에서 더 나아가 야한 몸짓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정적인 상업성에만 호소하는 저질작품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일컬어 연극계에서는 이른바 「뒷골목 연극」들만이 무대에서 살아남고 연극인들이 순간적인 상업성에 빠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됐다고 우울한 분석을 하고 있다.
상업주의에 찌든 연극들이 고교생 등 미성년자들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 또한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난무하는 선정적인 포스터에 자극 받은 고교생들이 연극관람이 가능한가를 문의하는 전화가 극단에 많이 오고있고, 상업적 성공이 어려운 극단으로서는 제한 없이 관객을 유치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TV를 통해 낯익은 개그맨들이 방송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기획한 코미디극 『나는 야한 코미디가 좋아』도 청소년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자유를 어렵게 획득했는데 무분별한 벗기기 경쟁으로 질을 떨어뜨리면서 미성년자들을 마구 끌어들여 당국의 제재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벌써부터 일고있다. 일부 연극기획자들은 『이 같은 야한 연극의 득세가 결국 관객들이 연극을 천박한 것으로 여기고 장기적으로 연극을 외면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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