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월요인터뷰

"북한, 미국 민주당 집권 땐 더 힘들어 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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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난 사람=강찬호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에서 물러난 빅터 차(46.사진)가 3일 퇴임 후 첫 인터뷰를 본지와 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부터 큰 틀의 대북 정책을 구상했다"며 부시가 중간선거 패배 훨씬 이전에 대북정책 선회를 결정했음을 밝혔다. 그는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절호의 기회를 잃는 것"이라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협상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미 공조가 과거보다 잘되고 있다. 한국이 대북 금융제재 해제 과정에서 미국이 보여준 유연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압박에서 협상으로 180도 전환한 시점과 배경이 가장 궁금하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가 분수령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지니까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선회했다는 건 언론의 추측인데 이는 전적으로 틀린 얘기다. 부시 대통령은 그보다 훨씬 전, 그러니까 지난해 7월 4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 여름부터 훨씬 큰 대북 구상에 착수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만들어진 9.19 합의가 전혀 이행되지 않은 점에 주목, '북한이 정말 진지한지 시험해 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때부터 실무 차원에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준비에 착수했다. 부시는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북한에 대해 훨씬 전략적이고 장기적 구상을 갖고 있다."

-그때부터 정책이 바뀐 것인가.

"우리는 정체된 9.19 합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국무부 한국과, 나의 상관인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동아태 선임보좌관과 나 등이 모두 7~8개의 정책 메모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여기서 밝힐 수 없다. 다만 각종 협의를 통해 '협상의 실(thread)'을 좀 더 강하게 잡아당길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평양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온 게 2.13 합의인가.

"그렇다. 9.19 합의는 북한의 비핵화, 대외관계 정상화, 경제지원 등 3개 부문으로 이뤄진 방대한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너무 커 한꺼번에 이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초기 조치(이니셜 액션)를 통해 북한이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게 2.13 합의로 구체화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협상의 실을 잡아당기는 동안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렇게 봐 달라.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핵실험 강행 직후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1695호와 1718호, 두 개의 대북 제재 결의를 끌어냈다. 여기엔 북한 편을 들어온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했다.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핵실험을 기회로 활용해 대북 지렛대로 만든 셈이다. 한국도 대북 지원을 중단한다고 돌아섰다. 이 때문에 평양은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찬성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평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강력 항의했다. 이건 중국 측이 확인해준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을 둘러싼 관리들이 강.온파로 분열돼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있다.

"근거 없는 얘기다. 우리는 모두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해 있다. 특히 딕 체니 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협상 정책에 단 한번도 비판적인 말을 한 적이 없다. 체니는 일본.호주와의 관계를 중시하긴 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일단 정책 방향을 결정하면 모두 따른다. 체니 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힐 차관보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반대를 표시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나 역시 백악관에 입성할 때 언론이 '미친 매파' '근본주의 매파'로 분류했다. 그러나 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다. 누구나 정책을 책임지면 실용주의로 바뀌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자는 것인가.

"세 가지다. 첫째, 핵 문제를 반드시 외교로 푼다는 것이다. 부시는 힘을 중시하는 마초(macho.남성)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 때문이라도 북핵을 더더욱 외교로 푼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둘째, 다자간 틀을 통해 핵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그게 평양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6자회담이 나왔다. 이건 전적으로 부시 대통령 아이디어다. 특히 북한에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중국과 한국을 끌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핵 해결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의 항구적 안보와 번영을 위한 시스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강경파들은 '부시가 핵 무장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적으로 틀린 얘기다. 북한의 핵 폐기가 먼저다. 핵 문제가 완전히 풀려야 평화협정이 가능하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2005년 9월 19일 나온 베이징 합의는 분명히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5개국 앞에서 약속한 것이다. 이를 위해 2.13 합의가 탄생했다. 하지만 핵무기를 1차 포기 대상으로 규정할 경우 문제를 풀어나가기 힘들다. 그래서 힐 차관보가 우선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막자고 해서 영변 원자로 폐쇄.불능화를 제안한 것이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 문제는 어떻게 되나.

"중요한 건 북한이 'HEU가 중요한 문제이며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담에서 그들은 이걸 인정했다. 이건 진전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심분리기 등 HEU 장비를 구입한 사실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3월 뉴욕 북.미 실무회담에서도 그들은 장비 구입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북한은 조속히 이 문제를 스스로 밝히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문제로 2.13 합의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걱정이다. 북한의 지연 이유는 2500만 달러를 되돌려받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체제에 편입되길 원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외국 은행이 자체적으로 북한 돈을 받지 않는 걸 미국이 강요해 다시 받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국제금융체제에 통합되려면 먼저 위폐나 돈세탁 등 금융범죄를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금융계가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취급할 것이다."

-지난 1월 베를린 북.미 회동에서 힐이 북한에 무엇을 약속했기에 평양이 이렇게 나오나.

"아무것도 약속한 것 없다. 문서 작성도 없었고 입장만 교환했을 뿐이다. 단지 우리는 '미국은 30일 이내에 BDA 이슈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북한은 늘 미국의 발언은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말은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다'고 했다. 그가 북한에 대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모른다. 나 역시 우리가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온라인 주문을 했는데 물품 배달이 3주 넘게 지연되면 어떤 기분이겠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리처드슨의 유해 반환 협상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었다. 또 당시 막 결정된 미 재무부의 북한 동결자금 전액 해제 방침을 그들에게 전했다. 북한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들은 BDA 자금 인출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가지 않았고 전하지도 않았다. 북측은 '2002년 마이클 그린(전 백악관 선임보좌관) 이래 백악관 고위 관리의 방북은 처음'이라고 아주 기뻐했다. 김계관 부상과 리근 외무성 미주국장 다들 그랬다. 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복귀 등 조속한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 재무부가 금융 해제에 어떤 입장인지 또 중국이 전액 해제 조치를 지지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방북 뒤 서울.도쿄.베이징을 들러 이 문제를 협의했다. 중국은 우리 조치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제가 잘 풀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북한 자금 전액 해제 조치를 두고 뒷말이 많다.

"불법자금은 분명 불법자금이다. 그러나 우린 북핵 폐기란 큰 틀을 위해 유연해져야 한다는 걸 이해했다. 그래서 그렇게(전액 해제)결정한 것이다."

-국무부 작품인가.

"아니, 재무부 결정이다. 국무부도 대통령도 아닌 재무부 결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이건 금융 문제다. 우리는 관계부처 간 협의는 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소관 부처가 내린다."

-북한에 할 말이 있다면.

"북한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최고의 기회를 잃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잠시 이탈한 적은 있지만 대북 협상에 진지했다. 북한이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다시 협상하려 한다면 그것은 큰 오판이 될 것이다. 특히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윌리엄 페리-애시턴 카터의 북한 선제공격론 기억나나? 그들은 민주당 인사들이다. 3월 뉴욕 북.미 실무회담 직전 열린 비공식 회동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 조정관 등 민주당 인사들이 김계관 부상에게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 민주당.공화당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차기 행정부에서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북한은 이를 잊어선 안 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 활약한 한국계
빅터 차는 누구 …

빅터 차는 2005년 초부터 지난달까지 2년4개월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이란 직책으로 한반도 정책을 주도해왔다. 그는 이달 초 백악관 근무를 마치고 조지타운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복귀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로 선회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6자회담의 미국 측 차석대표로도 활약해 왔다. 그는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별도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 북측의 고위 관리들을 만나 백악관의 입장을 전달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해 왔다. 북한 측은 그와의 면담을 통해 부시 대통령이 협상에 진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는 2.13 베이징 합의를 낳은 촉매가 됐다. 빅터 차는 지난달 8일 부시 행정부 2기에서 백악관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해 큰 관심을 모았다. 또 퇴임 직전인 지난달 24일엔 뉴욕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방문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전에 진전을 보여달라"며 2.13 합의의 이행을 압박하기도 했다.

한국계인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력한 압박을 병행한 협상 전술로 북한의 핵 폐기를 끌어내야 한다는 '매파 포용 전술(hawkish engagement)'의 주창자로 '핵무장 북한' 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2년간 대북 정책 실무를 맡아본 결과 내 이론이 맞았음을 확인했다"며 "미국이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술을 구사한 결과 북한을 지원해 온 중국과 한국이 대북 압박에 가세, 북한이 고립됐고 결국 대화에 응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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