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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아 오명 씻고 왕실 영광에 눈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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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12면

찰스 왕세자가 재혼한 다음 처음으로 공개된 2005년 왕실 가족 사진. 뒷줄 왼쪽 끝이 해리 왕자. 중앙포토 

영국의 해리(22) 왕자는 그냥 명문대가가 아니라 ‘대영제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나면서부터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관심 대상이었다. 그런 해리가 직업 군인이 돼 이라크 최전선 파병을 자원했다.

이라크 파병 자원한 영국 해리 왕자

알카에다, 이라크 반군 등 영국과 미국의 적들이 해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ㆍ미 제국주의와 싸운다는 자부심에 가득 사기가 오른 이슬람 전사들이 해리의 사진을 보며 얼굴을 익히고 있다.

해리의 이라크 파병은 지난 2월 결정됐다. 하지만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가 이라크에서 암살되거나 납치되는 등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지난주에 이라크 파병이 일단 유보됐다. 그러나 해리는 “이라크 최전선에 보내주지 않으면 전역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해리가 목숨을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을 자원하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해리 왕자가 지난해 3월 정식 임관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마친뒤 뒤 찍은 공식 사진. 아래는 1992년 해리 왕자와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   

해리는 1984년 9월 15일 런던 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 해리는 외견상 평범한 말썽꾸러기로 자랐다. 럭비ㆍ등산ㆍ스키ㆍ축구를 즐긴다. 음악을 좋아한다.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해 구설수 끝에 어렵사리 명문 이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리가 대중적 호감을 모은 계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다. 해리는 대학 진학 대신 영국 전통에 따라 갭 이어(gap year)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 해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이 기간 중 해리는 호주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고 아프리카에 가선 봉사활동도 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이 영국인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해리는 2005년 5월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군 통수권자’인 왕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직업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다. 44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2006년 4월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이제 왕실의 영광을 위해 비장의 전쟁터행을 결심했다.

많은 영국인들이 해리 왕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그동안 어린 왕자가 겪어온 방황과 좌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는 12살 때 어머니 다이애나를 잃었다. 7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서로 혼외정사를 고백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긴 세월은 어린 왕자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었을 것이다.

언론과 세간의 지나친 관심도 문제였다. 해리는 원래 잘 웃는다고 해서 별명이 ‘행복한 왕자’였다. 그러나 언론의 끈질긴 추격으로 그의 별명은 그만 ‘파티의 왕자’가 되고 말았다.

2002년 해리가 마리화나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알려져 아버지 찰스(57) 왕세자가 해리를 재활센터로 보냈다. 2004년에는 런던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다 파파라치 사진가와 우격다짐을 해 말썽이 됐다. 새벽 3시쯤 만취한 상태였다. 그때 해리는 이렇게 절규했다고 한다. “왜 날 좀 내버려두지 않는 거야?”

2005년 초에는 가장무도회에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한 독일 에르빈 로멜 장군의 나치스 복장으로 나타나 구설에 올랐다. 하필이면 유대인 학살 추모일을 며칠 앞둔 때였다. 여론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해리는 공식 사과해야 했다. 미국의 어느 랍비는 해리가 영국의 망신이라고 했다. 도박사들은 해리가 사관학교 졸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기까지 걸었다.

방황하는 해리에게는 영화 ‘에덴의 동쪽’(1955)에 나오는 제임스 딘의 이미지가 있다. 반항아 칼의 묘한 매력이다. 2002년에는 영국 상류사회를 많이 다루는 잡지 ‘태틀러’의 설문조사에서 영국에서 “제일 데이트하고 싶은 멋진 남자”로 뽑혔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는 인기가 없다. 많은 영국인은 엘리자베스 2세(81) 여왕의 왕위를 찰스가 아니라 장손 윌리엄(해리의 형)이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리 왕자는 형 윌리엄과 더불어 영국 왕실의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영국 왕실 유지에 매년 6500만 달러가 들어간다. 납세자의 돈을 흥청망청 쓴다는 따가운 눈총에 대항해야 한다.

해리는 고집불통이다. 해리는 말한다. “나는 나다. 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해리는 또 자신이 일으킨 여러 말썽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좀 더 지켜봐 달라고 했다. 과연 해리는 이라크에 가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무사히 돌아와 영국 국민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까. 말썽꾸러기 왕자 해리의 이라크전 참전이란 모험에는 해리 자신만이 아니라 영국 왕실의 명예도 함께 걸려 있다.

끊긴 왕실 軍복무 전통 해리가 5년 만에 이어

영국 군인들은 ‘국가에 대한 맹세’ 대신 ‘왕(여왕)에 대한 맹세’를 한다. 형식상 국가원수 겸 군 통수권자가 왕(여왕)이다. 국방과 관련된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에게 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육ㆍ해ㆍ공군의 통수권자며 전쟁 선포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군 부대 이름에 ‘Royal’이란 이름이 많이 들어간다. 군함은 모두 ‘HMS(Her Majesty’s Ship)’, 즉 ‘여왕폐하의 함정’이라는 이름이 꼭 포함된다. 영국 항공모함 이름은 ‘HMS Invincible’이다.

영국 왕실은 늘 군복무를 중시해 왔다. 왕실은 최소한 한 명의 남자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전통을 유지하고자 애써 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공주 시절 여자 국방군(ATS) 소속이었다. 선왕 조지 6세도 해군사관학교를 나왔다. 해리의 할아버지인 필립 공(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장교였다. 1939년부터 52년까지 근무했다. 아버지 찰스는 공군 조종사 훈련을 받았으며, 해
군에서는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정(掃海艇)의 함장이었다.

가장 군에 오래 복무했던 왕실의 남자는 해리의 작은 아버지 앤드루 왕자다. 그는 해군에서 22년간 복무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82년)에서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앤드루 왕자가 2001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엘리자베스 여왕 직계 가운데 현역이 없었다.

단절된 왕실의 전통을 이은 것이 해리 왕자다. 뒤이어 형인 윌리엄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 중이다. 해리 왕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업군인의 길을 택해 일찌감치 군인이 된 반면 형 윌리엄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뒤늦
게 입대했다. 형제는 모두 블루스 앤드 로열스(Blues and Royals) 연대 소속이다.

한편 해리와 윌리엄 왕자가 졸업한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대학이 아니다. 윌리엄 왕자의 경우처럼 보통 대학 졸업 후 입학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입학한 해리 왕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학 졸업이 필수사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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