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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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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5면

먼 옛날 1980년대에는 긴 휴일이나 방학엔 아이들끼리 손잡고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구니스’ ‘ET’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들은 흥분한 아이들이 주먹을 쥐고 응원해주고 싶은 또래 영웅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두고두고 추억이 되었고 때로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극장가엔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아이들도 없다. 모험이 사라져버린 시대일까. ‘날아라 허동구’는 그처럼 모험이 증발하고 학원과 점수가 그 여백을 메우고 있는 요즘, 조그만 운동장에도 모험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함께하는 5월

날아라 허동구

학습 지진아이지만 학교 가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동구(최우혁)는 점심시간이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아이가 된다. 동구는 물주전자를 들고선 아이들이 찾을 때마다 달려가 물을 따라주곤 한다. 그러나 교실에 정수기가 비치되면서 동구는 유일하게 자기 자리였던 물 당번 일을 잃고 만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진규(정진영)는 그런 아들을 보듬어주려고 애쓰지만, 집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과 동구를 특수학교로 전학시키라는 담임교사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구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반가운 주전자를 발견한다. 그곳은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야구부 훈련장. 주전자를 되찾은 동구는 그보다 힘든 임무 또한 함께 떠맡게 된다.

‘날아라 허동구’는 제목처럼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기운찬 영화다. 정말 “날아라!”라고 외쳐주는 듯한 이 영화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여워하지 않고, 다만 그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한다. 동구는 집에 오는 길을 익히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리는 아이다. 마음 착한 아이라면 그런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지만, ‘날아라 허동구’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주전자 때문이라고는 해도 동구는 야구부원이 되었고, 공을 치지 못한다면 번트를 해서라도 1루와 2루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야구공에 살짝 배트를 가져다 대고 운동장을 돌아 홈인하기까지 동구는 오직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날아라 허동구’는 따뜻하지만 천진난만하지는 않다. ‘날아라 허동구’는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생존과 공존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허리를 굽히고 속삭여준다.

스파이더 맨 3

5월은 이렇게 작고 귀여운 모험이 어울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엔 언제 보아도 반가운 해리 포터 군(‘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과 대니 오션이 이끄는 강도 일당(‘오션스13’)이 찾아올 것이고, 그들보다 훨씬 먼저 ‘스파이더맨 3’가 대로를 닦아 놓을 것이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는 명언을 남긴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3편에 이르러 오만하지 말라는 설교를 전한다.

수퍼 히어로 생활도 어언 몇 년이 지나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제법 능숙하게 스파이더맨 노릇을 한다. 메리 제인(키어스틴 던스트)과의 관계도 안정됐고, 뉴욕에선 스파이더맨 캐릭터 인형도 팔리고 있다. 그러나 숙부를 죽인 진범이 실험장치에 떨어져 변형된 샌드맨과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그린 고블린 2세가 들이닥치면서 피터는 어느 때보다 복잡한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스파이더맨으로서의 명성에 취한 데다 제인과의 불화까지 겪게 된 피터는 마음속에 검은 그림자를 지니게 되고 마침내 그 그림자가 탈선하기에 이른다. ‘스파이더맨 3’는 우리가 블록버스터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마천루 사이를 능숙하게 미끄러지는 활강이 있고, 대여섯 번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액션이 있고, 매력적인 악당과 여인과 영웅이 스크린을 휘젓는다. 말하자면 ‘스파이더맨 3’는 로맨스와 성장담과 수퍼 히어로 영화가 뒤섞인, 풍선껌 기계와도 같다. 다음 장면에선 무슨 맛이 나는 풍선껌이 떨어질까, 남녀노소는 제각기 자기 취향을 따져보며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스파이더맨 3’는 과욕을 부린 나머지 복잡하고 정신없는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아들

그저 햇빛만 보고 있어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봄날, 단순하기에 행복한 봄날의 기분을 극장에서도 느껴보고 싶다면 여기 터무니없이 간단한 영화가 있다.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의 장진 감독은 재치 있는 장난과 농담,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와 설정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감독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그런 재주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애틋한 감정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만 끌어가는 영화다.

15년 전 살인강도죄로 수감된 무기수 강식(차승원)은 하루 동안 귀휴를 얻어 세상에 나온다. 그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들 준석(류덕환)을 만나러 가지만, 치매 걸린 할머니를 홀로 모시고 살아온 준석은 아버지에게 냉랭하기만 하다. 그러나 핏줄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싣고 부자(父子)를 끌어당긴다. 안테나를 바로 세워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을 고치고, 소반을 사이에 두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함께 빗길을 달린 다음 나란히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향해 조용한 독백을 나눈다. 마지막에 반전을 간직하고 있는 ‘아들’은 자칫 배신감을 안길 수도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 반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들’은 진실하기에 어떤 장치도 필요하지 않은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나긴 철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아야만 하더라도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그곳에 있다면 삶은 스스로를 지탱해줄 것이다. ‘아들’은 그처럼 서로 기대고 기대어주며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생각해 보는 짧은 성찰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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