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고마워 … 사랑해, 여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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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울산 모비스의 통합 우승으로 끝난 2006~2007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최종전까지 가는 명승부답게 숱한 뒷얘기를 남겼습니다. 특히 7차전이 끝난 뒤 우지원(34.모비스)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부인 이교영씨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은 장면(사진)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줬습니다.

우승 축하연 자리에서 우지원은 기자들에게 일일이 소주 한 잔씩을 따라주며 감격을 되새겼습니다. '우승이 확정되면 부인에게 달려갈 생각이었나'는 질문에 그는 "미리 계획했던 건 아니고요. 너무 기뻐 정신이 없는 중에서도 두 사람한테는 꼭 감사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둘은 유재학 감독과 부인이었습니다. 우지원은 먼저 유 감독에게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한 뒤 두 차례나 감독을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우승해도 울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유 감독도 이 장면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15년 전 시작됐던 질긴 인연의 실타래가 우승이라는 '해피엔딩'으로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지원이 1992년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 유 감독은 코치였습니다. 연세대가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열 때 우지원은 '코트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96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우지원은 더 이상 황태자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선수가 코트를 장악하면서 '전문 슈터'는 설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99~2001년 두 사람은 대우에서 감독과 선수로 호흡을 맞췄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유 감독은 기복이 심하고 수비력도 떨어지는 우지원을 2001년 6월 문경은과 맞트레이드했습니다. 3년 뒤 이들은 모비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우지원은 긴 방황 끝에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마당쇠'로 변신해 있었고, 유 감독도 그를 믿고 승부처에 중용했습니다. 우지원은 올 시즌 '식스맨 상'을 받았고, 챔피언전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유 감독을 놓아준 우지원은 부인을 향해 달려가 와락 껴안은 뒤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습니다. 프로 10년 만에, 그리고 결혼 6년 만에 처음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말 못할 고민을 모두 받아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우지원은 "아내가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아내에게 정상에 선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호리호리한 황태자'였던 그는 어느새 '우람한 근육질의 마당쇠'가 됐습니다. 그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루 한 시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합니다.

우지원은 "후배들이 '아, 그 선배'라고 기억할 만한 선수로 멋지게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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