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와 만날 땐 정장 입고 … 차 탈 땐 90도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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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선배 앞에선 담배를 피우지 말고, 전화를 끊을 땐 항상 '쉬십시오, 형님'이라고 말한다."

10개월가량 폭력조직에 몸담았던 전모(24)씨가 털어놓은 '행동 강령'이다. 2005년 10월 전씨는 친구 제의로 '종로파'에 들어갔다. 평소 검정 정장에 외제차를 타고 선배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조폭의 모습을 동경해온 터였다. 그러나 막상 발을 들여놓은 조폭의 세계는 생각과 달랐다. 전씨는 서울 보광동의 다세대주택에 마련된 12평 합숙소에서 선배 5~6명과 생활했다. 선배들은 갓 들어온 전씨에게 조직의 행동강령부터 외우도록 강요했다. 선배에게 말을 걸 땐 '형님' 호칭을 꼭 붙여야 한다거나 90도로 굽혀 인사하라는 등 선배들에 대한 예절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합숙소에서 그가 하는 일이 선배들의 옷을 빨고 구두를 닦는 일이 전부. 가장 큰 고역은 '몸 불리기'였다. 선배들은 매 끼니 세 그릇 이상의 밥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반찬은 풋고추와 고추장이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생활비가 없어 세 끼니 모두를 라면으로 때우기도 했다. 매일 3~4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도 해야 했다.

견디지 못한 전씨는 결국 2006년 8월께 합숙소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이내 선배들에게 잡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집단 폭행을 당해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4일 조직원과 유흥업소 종업원 등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서울 종로파' 두목 허모(46)씨 등 5명을 구속했다. 또 달아난 최모(50)씨 등 14명을 지명수배하고 조직원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구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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