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할 한국영화 흥행작이 없는 가운데 1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 주자 ‘스파이더맨3’가 전국 스크린의 3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사진은 12개관 가운데 5개관에서 ‘스파이더맨3’를 상영하고 있는 서울의 한 극장. 양영석 인턴기자
반면 같은 날 개봉한 한국영화 '아들'의 첫날 관객 수는 4만6000여 명. '스파이더맨3'의 10%가 채 못 된다. 한국영화와 외화가 맞붙으면 대개 한국영화의 우위를 점치던 것이 옛말이 된 것이다. 올 들어 개봉한 한국영화 30여 편 가운데 관객 200만 명을 넘긴 것은 '그놈 목소리' '1번가의 기적' 등 단 두 편뿐(표 참조, '미녀는 괴로워'는 2006년 12월 개봉)이다. 초라한 성적표가 보여주는 대로 한국영화는 지금 침체기다.
◆ 스타 캐스팅해도 투자 못 받아=최근 충무로에는 한 중견감독의 신작이 A급 스타로 주연까지 정해지고, 제작비의 10% 이상이 투입된 단계인데도 '엎어졌다'(제작 중단이라는 뜻)는 소문이 빠르게 나돌았다.
이름 있는 스타를 캐스팅하고도 투자를 받지 못해 감감무소식이 되는 영화가 요즘 충무로에서는 적지 않다. 정우성.전지현 등 톱스타를 거느린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의 박성혜 본부장은 "지금껏 겪어 본 중 최고의 위기"라고 말한다. 그는 "캐스팅 의뢰가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평소의 절반으로 줄었고, 제작되는 영화는 그 절반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 거품 붕괴보다 깊은 침체=2006년 한 해 동안 한국영화는 우회 상장 등 자본 유입의 여파로 예년보다 30%나 많은 100여 편이 개봉됐다. 시장 규모는 비슷한데 영화 편수가 급증하면서 수익률이 급락했다. 충무로에는 지난해 한국영화가 1000억원대 손실을 냈다는 추정도 나돈다. 이 같은 손익 계산은 곧바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침체가 지난해의 거품이 꺼지면서 단기적인 하강 국면에 들어선 것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영화 한 편에 대략 16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수지를 맞추었다. 2004~2005년에는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중심의 해외 수출이 늘어나 고비용을 보완해 주었지만 지난해에는 이마저도 크게 줄었다.
시장을 주도하는 젊은 관객 층의 열기도 예전 같지 않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인터넷 다운로드가 보편화되면서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통념이 깨졌다"고 지적한다.
◆ 한국영화 10년 르네상스 끝나나=한국 영화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충무로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성장기를 구가했다. 96년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침대' 등이 국산 상업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해였다.
이후 한국영화는 콘텐트.유통.관객의 삼박자가 호응을 이루며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냈다.
음반시장이 붕괴되고, 97년 IMF 외환위기로 사회 전반이 휘청거리는 와중에서도 한국영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활력을 지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 이상무 부장은 "충무로의 침체가 계속되면 영화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창의력을 북돋워 온 인력들이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남.주정완 기자
◆ 스파이더맨3=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된 소년의 성장담이자 액션극.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만화시리즈를 샘 레이미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다. 3억 달러(약 28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