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떠나라, 그게 애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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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54년 19세의 이철호는 북유럽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 나라가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을 게다. 지금도 멀게만 느껴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그는 53년 전에 밟았다. 전쟁 중에 파편을 맞아 옆구리와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의료지원단으로 한국에 온 노르웨이 의사의 배려로 치료차 갔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40여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래도 아직 다리를 상당히 전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넘친다.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최근 그와 오슬로 시내를 몇 시간 같이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연예인 수준의 유명 인사다. 노르웨이엔 왕이 둘이라는 농담이 있다. 왕궁에 하랄 5세가 있고, 또 한 사람은 '누들 킹(라면 왕)'이다. 후자는 '미스터 리'란 브랜드로 이 나라에 라면을 전파하고 그 시장을 장악한 그의 애칭이다.

그가 이런 유명세를 얻기까지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는지는 이 좁은 지면에 다 열거할 수 없다. 그에겐 신념이 있다. '노력해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다. 선친이 물려주신 이 신조에 따라 그는 온갖 역경을 다 이겨냈다. 그는 딸 셋을 두었다. 각각 요리사, 의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모두 유럽 남자와 결혼해 잘살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여러 다른 한국인도 만났다. 한라그룹에서 일하다 8년 전 이민와 선박중개업을 하는 김호현(56)씨. 가족과 함께 온 그는 아주 만족해 했다. 약 40년 전에 왔다는 이해란씨도 있다. 현직 간호사인 그녀는 이 나라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 미술관에서는 오슬로대학에 다니는 한 여대생을 만났다. 이들이 신(新) 애국자다. 한국을 떠나 살면 다 애국자다. 한국이 싫어 집 팔고 논 팔아 이민 간 사람도 애국자다. 이 비좁은 땅에 그만큼 여유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시험에 실패해 자살하는 학생은 더 이상 뉴스가 못 될 정도다. 강남 아파트값은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길을 아무리 뚫어도 주말이면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어깨를 부닥치고도 미안하다고 말할 줄도 모른다. 이런 문제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방의 의무니, 납세의 의무니 하는 애국 교육을 받았다. 이제는 애국하는 법을 달리 생각할 때가 됐다.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처럼 열심히 살면 어디 가도 굶어죽을 일이 없다. 영어나 그 나라 언어를 못해도 좋다. 생존의 상황에 처하면 말문은 절로 트인다.

국부(國富) 유출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개방될 대로 개방된 지구촌에서 국부의 개념은 더 이상 국경에 갇혀 있지 않다. 아파트 판 돈을 들고 나가든, 빈손으로 나가든 상관없다. 이 피 터지는 경쟁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만 하면 좋다. 나가는 사람만큼 일자리 쟁탈전도 줄어들 것이다. 외국기업을 유치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두뇌 유출이 우려된다고? 이 나라엔 인재가 넘쳐난다.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도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여전히 많다. 외국에 나가 보면 한국 사람만큼 머리 좋고 생활력 강한 이들도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철호씨가 바로 그 증거다. 국적은 노르웨이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그에겐 평생의 꿈이 있다. 노르웨이의 뛰어난 해저 터널 기술을 이용해 거제와 제주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지금도 이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그는 명백한 한국인이다. 한국인들의 귀소 본능은 이처럼 강하다. 이런 점에서도 국부 유출이나 두뇌 유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반복된다. 해외에 나가 사는 것이 신 애국의 길이라고.

심상복 국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