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 588쪽, 2만3000원
다른 역사책과 다른 역사책이다. 시각은 독특하고 문체는 파격적이다. '맨발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보양(柏楊)이 썼으니 당연하다. 중국과 대만에서 고루 배척받은 반체제인사답게 상식과 정설을 못 견뎌한다. 그리고 "이런 빌어먹을"같은, 술자리에서나 함직한 말투로 이를 뒤집고 헤집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왕을 칭한 559명의 우두머리 중 약 3분의 1 가량이 제 명에 못 죽었다. 대부분 믿었던 측근들에 의해 목 졸리고 굶고 해서 이승을 떴다. 보양은 다양한 사서를 동원해 비명에 간 27명의 제왕의 삶과 죽음을 파헤친다.
이방훈, 요중화 이런 낯선 이름이 서두룰 장식한다. 이방훈은 요제(堯帝)요, 요중화는 순제(舜帝)다. 4000여년 전의 인물이지만 동양에서는 성군(聖君)으로 통한다. 스스로는 띠집에 사는 등 검소하기 짝이 없었고, 지도자가 있는듯 없는듯 통치해 백성들이 배 두드리며 살게끔 했고 마지막엔 권좌를 자식이 아니라 유능하고 덕있는 인물들에게 넘겼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공자 이래 그들의 치세는 '요순시대'라 해서 태평성대의 표본으로 꼽힌다.
보양은 웃기지 말란다. 요제가 스스로 원해서 선양한 게 아니란다. 사위였던 순제가 슬그머니 권력을 잡고는 충신들을 '사흉(四凶)'으로 몰아 죽이고, 아들과도 이간질시켜 어쩔 수 없이 정권을 내준 거란다. 공포정치로 천하를 복종시키고 권력을 뺏은 사실이'선양'으로 미화된 것은 공자. 맹자 등 유가의 붓장난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정치만능의 큰 깃발 아래 권력을 쥔 자는 복이다. 진리, 정의, 공평, 인심 등이 모두 그들의 것이고 성인까지 그들 편에 서서 부패조차 신비한 기적으로 바꾸어주려고 애를 쓴다"고 비아냥거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정치적 간음'이라며 "많은 사적들이 야심가에게 악용되어 왜곡과 전도를 면치 못했고 심지어 흑백이 뒤바뀌기도 했다. 그 결과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니 모든 개가 짖는 기막힌 구경거리가 생겨났다"고 심한 말을 한다.
그렇게 왕위를 내줬음에도 요제의 말년은 비참했다. 하늘에 두 태양이 있는 걸 꺼린 순제의 권유로 그는 전국 시찰을 떠나야 했다. 기원전 23세기, 변변한 마차조차 없던 시절 119세 노인에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여행은 고행이었다. 결국 요제가 수도에서 260㎞ 떨어진 변방에서 숨을 거뒀다. 보양은 요제가 구박받다가 얼떨결에 죽었다고 규정한다.
객사(客死)보다 더 비참했을 가능성도 비친다. 지은이는 중국 고대서 연구 자료 중 하나인 '죽서기년(竹書紀年)'을 인용한다. "이방훈은 요중화에게 쫓겨나 요성에서 모든 이들과 격리된 채 감금되었다"라고.
절대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중국 제왕들의 행적과 권력다툼을 읽다보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야유로 읽힌다. 춘추전국시대까지만 다뤄 아쉽지만 지은이는 이 정도로도 족하다고 본 모양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김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