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요순이 성군 ? 태평성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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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왕지사
보양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 588쪽, 2만3000원

다른 역사책과 다른 역사책이다. 시각은 독특하고 문체는 파격적이다. '맨발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으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보양(柏楊)이 썼으니 당연하다. 중국과 대만에서 고루 배척받은 반체제인사답게 상식과 정설을 못 견뎌한다. 그리고 "이런 빌어먹을"같은, 술자리에서나 함직한 말투로 이를 뒤집고 헤집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왕을 칭한 559명의 우두머리 중 약 3분의 1 가량이 제 명에 못 죽었다. 대부분 믿었던 측근들에 의해 목 졸리고 굶고 해서 이승을 떴다. 보양은 다양한 사서를 동원해 비명에 간 27명의 제왕의 삶과 죽음을 파헤친다.

이방훈, 요중화 이런 낯선 이름이 서두룰 장식한다. 이방훈은 요제(堯帝)요, 요중화는 순제(舜帝)다. 4000여년 전의 인물이지만 동양에서는 성군(聖君)으로 통한다. 스스로는 띠집에 사는 등 검소하기 짝이 없었고, 지도자가 있는듯 없는듯 통치해 백성들이 배 두드리며 살게끔 했고 마지막엔 권좌를 자식이 아니라 유능하고 덕있는 인물들에게 넘겼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공자 이래 그들의 치세는 '요순시대'라 해서 태평성대의 표본으로 꼽힌다.

보양은 웃기지 말란다. 요제가 스스로 원해서 선양한 게 아니란다. 사위였던 순제가 슬그머니 권력을 잡고는 충신들을 '사흉(四凶)'으로 몰아 죽이고, 아들과도 이간질시켜 어쩔 수 없이 정권을 내준 거란다. 공포정치로 천하를 복종시키고 권력을 뺏은 사실이'선양'으로 미화된 것은 공자. 맹자 등 유가의 붓장난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정치만능의 큰 깃발 아래 권력을 쥔 자는 복이다. 진리, 정의, 공평, 인심 등이 모두 그들의 것이고 성인까지 그들 편에 서서 부패조차 신비한 기적으로 바꾸어주려고 애를 쓴다"고 비아냥거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정치적 간음'이라며 "많은 사적들이 야심가에게 악용되어 왜곡과 전도를 면치 못했고 심지어 흑백이 뒤바뀌기도 했다. 그 결과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니 모든 개가 짖는 기막힌 구경거리가 생겨났다"고 심한 말을 한다.

그렇게 왕위를 내줬음에도 요제의 말년은 비참했다. 하늘에 두 태양이 있는 걸 꺼린 순제의 권유로 그는 전국 시찰을 떠나야 했다. 기원전 23세기, 변변한 마차조차 없던 시절 119세 노인에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여행은 고행이었다. 결국 요제가 수도에서 260㎞ 떨어진 변방에서 숨을 거뒀다. 보양은 요제가 구박받다가 얼떨결에 죽었다고 규정한다.

객사(客死)보다 더 비참했을 가능성도 비친다. 지은이는 중국 고대서 연구 자료 중 하나인 '죽서기년(竹書紀年)'을 인용한다. "이방훈은 요중화에게 쫓겨나 요성에서 모든 이들과 격리된 채 감금되었다"라고.

절대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중국 제왕들의 행적과 권력다툼을 읽다보면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야유로 읽힌다. 춘추전국시대까지만 다뤄 아쉽지만 지은이는 이 정도로도 족하다고 본 모양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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