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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유토피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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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유토피아 이야기
이인식 지음, 갤리온, 514쪽, 2만5000원

인간은 꿈을 꾼다. 단순히 현실을 되새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 즉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16세기 초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자신이 창작한 유토피아를 일컬어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유토피아는 환상과 이상의 퓨전이 아닌가.

지은이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를 꿈꿨던 아홉 명의 생각을 담았다. 아홉 명의 작가가 제시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소개하고, 주요 원문을 붙인 뒤 각각에 대한 쟁점을 정리했다. 유토피아 꿈꾸기를 통해 인간 사상의 흐름을 살펴본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도구로 삼아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키웠다. 인문주의자이자 경건한 기독교도였던 토마스 모어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섬나라를 제시했다. 실천.자연 철학을 강조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기술과 기독교 정신이 융합한 신세계를 추구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가축인 말이 세상을 지배하는 내용의 풍자 작품으로 현실의 모순을 비꼬았다.

하지만, 이들은 꿈을 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19세기에 들면서 '신세대 방식'으로 유토피아에 접근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평등한 낙원을 현실세계에 실제로 건설하려고 나선 사회주의자들이 주인공이다.

이 시기 미국의 사회주의자 작가인 에드워드 벨라미가 쓴 숱한 유토피아 소설에 열광한 이들은 책 속의 평등세계를 구현하려고 토지를 구입해 공동체 건설에 나서기도 했다.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 문명이라는 독약 때문에 노동의 기쁨을 상실한 현실을 비판하다가 이를 직접 타개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를 찾아 오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그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천가를 겸했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비평가.몽상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그 어떤 유토피아도 지상에 실현된 적은 없고 세상 모순은 되려 더 커져만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토피아와 함께 그 반대에 있는 디스토피아, 즉 부정적인 암흑의 미래세계도 함께 그린다. 러시아 혁명을 겪은 공학도 출신 소설가 예프게니 자먀틴은 '국민의 욕망까지 관리하는 기계화된 문명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제시했다. 맞춤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빅 브러더가 우리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 '1984년'이라는 디스토피아는 그 어떤 유토피아보다 현실의 문제점을 더욱 생생하게 고발했다.

지은이는 이상사회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무한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코케인(Cockayne), 절제와 자연을 강조한 목가적인 이상향인 아르카디아 또는 에덴동산, 그리고 의롭고 착한 이들만 살게 된다는 기독교의 천년왕국, 그리고 다른 것의 장점을 모아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든 유토피아가 그것이다. 그는 유토피아를 '물질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사회 질서와 미래의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향유하는 완성형이 아니고, 끝없이 추구해야 하는 진행형이라는 뜻이리라.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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