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신라·고려·조선 3조 충신 모신 숙모전·삼은각·동계사|시인 이근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리는 충절이라는 말을 예사로이 듣고 무심코 뱉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 얼마나 눈부신 광명이며 얼마나 높고 맑은 하늘인가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작은 이익에도 허리 구부리고 살아야하는 우리가 어찌 함부로 충절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으랴. 다만 저렇듯 장엄한 충절의 역사가 산과 강을 이루는 이 땅에 태어났음이 송구스러울 뿐이요, 우러러 그 제단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음이 분에 넘칠 뿐이다.
오늘은 이 나라의 가장 크고 높은 충절을 한자리에 모신 사당이 있는 계룡산으로 떠난다. 백두대간이 그 단전에 힘을 주어 불끈 솟아오른 듯한 계룡산은 머리에 닭의 벼슬을 하고있는 용의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을 얻었단다.
해발 8백50m(상봉)의 계룡산은 백두·지리·금강·묘향과 더불어 오악의 하나며 조선왕조 창건 때는 무학대사가 천년도읍지로 가리켰던 명산길지로 일컬어오고 있다.
정감록의 참언과 함께 신도안이 시대를 거슬러 자리잡고있고 최근에는 계룡대가 들어서서 무학의 옛 꿈이 되살아나는 기운을 내뿜고 있다.
대전에서 서쪽으로 60리쯤 가면 국립공원 계룡산과 만나게되고 거기 동쪽입구에 동학사(공주군 반포면 학봉리)가 마중나와 서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23년(724) 회의화상이 창건한 절인데 지금은 비구니 승가대학이 되어 젊은 여승들의 수도장으로 더 이름이 높다.
강주인 일초스님 밑에서 1백20여 젊은 비구니들이 수행, 정진하는 불교의 도량으로만 알려진 이 동학사는 뜻밖에도 이 나라 충절의 상징인 거유들을 모신 삼사인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와 한 울타리 안에 추녀를 맞대고있는 것이다.
충절을 기리는데 있어서 불교와 유교가 따로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동학사에 와보면 불교와 유교가 천년토록 한 핏줄이 되어 의좋게 살고있음을 보게된다.
먼저 숙모전에 절을 한다. 삼촌인 수양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귀양갔다가 열일곱 나이로 사약 사발을 받아야 했던 억울한 임금 단종과 정순왕후를 모신 곳이다.
숙모전의 양옆에는 서무와 동무가 있는데 서무에는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을 비롯하여 그를 따르는 조선조의 큰 선비 47위가 배향되었고 동무에는 이맹전·조려·원호·김시습·성담수·남효온 등 생육신을 비롯, 그에 동참하는 절의의 인물 47위를 모신 사당이다.
삼은각은 고려말의 삼은인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치은 길재와 세 정승이었던 유방택·이숭인·나계종 등 여섯 분의 제향을 받드는 사당이고 동계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고려의 개국공신 유차달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그러면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박제상은 저 망부석으로 이름이 높은 신라의 충신이다. 눌지왕 원년(417)년 그는 삽량주간(삽량주간)이라는 벼슬에 올라있었는데 임금의 명을 받고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눌지왕의 동생 복호를 데려온 다음, 일본에 건너가 역시 볼모인 동생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왜왕에게 붙잡혀서 문초를 받게된다.
박제상은 왜왕의 회유와 모진 고문에도 『나는 신라의 신하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신라의 개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고 머리를 꼿꼿이 세워 목도에서 불에 태우는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된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치술령에서 통곡하다가 쓰러져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을 박제상의 충절과 함께 오늘토록 우리의 가슴에 물이랑을 보내오고 있다..
고려왕조가 섰을 때 개국공신 유차달은 태조 왕건의 원당을 동학사로 삼고 증축할 때 박제상의 영정이 가까운 부락의 민가에 봉안되었다는 것을 알고 동계사를 창건하고 초혼제를 지낸다.
그로부터 4백74년 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다. 태조(이성계) 3년(1394년) 치은 길재가 동학사에 찾아든다. 그에게 성리학을 가르쳐준 스승 포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게 격살된 지 두해 뒤의 일이다.
길재는 신라의 충신인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 옆에 고려의 충신인 스승 포은의 제단을 세운다. 초혼제를 올리며 엎드려 통곡한다. 그 두해 뒤에는 또 한분의 스승 목은 이색이 여강에서 빠져죽자 함께 배향하고 길재가 죽은 후에는 유방택이 여기에 모셔 삼은각으로 이름이 지어진다.
삼각산에서 책을 읽던 김시습은 어느 날 마른하늘의 벼락만큼이나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단종이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가 세상을 잘못 만난 터에 글을 읽어 무엇을 할까보냐고 책을 모두 없애버리고는 훨훨 떠돌아다니기로 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는 성삼문 등이 국문을 당하는 곳에 가까이 가기도 하면서 불사이군의 충렬을 지키다가 죽음을 당하는 신하들을 거두기로 마음먹는다.
세조2년(1456년) 6월 그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탄로가 나서 참살된 사육신의 시신들을 노량진 언덕에 장사지내고는 곧바로 동학사에 내려와 향불을 피운다. 사육신의 원혼들을 신라·고려의 역대충신들 곁에 모시고 초혼제를 지내서 넋을 위로하고자 함이었다.
다음해9월 세조는 재앙을 받았는지 몸에 부스럼이 생겨서 이를 고치려고 오대산·속리산 등을 돌아다니다 동학사에 들른다. 세조는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비단에 「병자원적」이라는 제목아래 사육신과 연좌하여 죽음을 당한 아버지와 아들 등 1백여명의 이름을 적어 동학사에 내려 그 원혼들을 위로하고 용서를 비는 제사를 지내게 한다.
단종이 유배지인 청령포(강원도 영월)에서 사약을 받은 것은 그해 10월24일(음력)이었고 시신을 거두어 암장한 엄흥도를 만난 김시습이 엄흥도로부터 단종의 어포를 받아 동학사에 가지고 와서 조상치·조려·성희 등과 함께 품자 모양의 제단을 세우고 손수 축을 지어 통곡하며 읽는다.
그 이듬해 세조는 다시 원적에 빠진 이름을 적어 내리고 초혼각을 짓게 한다. 주위 20리의 땅도 하사하여 해마다 10월24일에 대제를 올리게 하니 맑은 하늘에서 피비가 쏟아졌다고 「동학지」에는 적혀있다. 자신을 따르지 않았지만 거룩한 충정 앞에는 세조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후 김시습은 조상치 등 유생들과 월잠·운파 등 승려들과 의논하여 매년3월 보름(음력)과 10월24일 봄 가을 두 차례의 제사를 지내도록 결정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아, 저 신라·고려·조선조에 이르는 하늘을 덮는 충절의 대서사시를 단 몇 자라도 어찌 옮겨 적을 수 있으랴. 따로이 틈이 날 때마다 청사의 옷깃을 스치겠거니와 단종과 사육신의 신위가 한자리에 모여 사는 숙모전에 와보니 생육신 원호의 『몽유록』을 펼치지 않을 수가 없다.
원호의 호는 관란이며 세종5년에 과거에 급제, 집현전 직제학까지 벼슬이 올랐으나 수양대군이 득세하자 원주에 가서 숨어산다. 그는 단종의 죽음을 듣고 곧 영월에 달려가서 삼년상을 치른다. 세조가 벼슬을 주나 끝끝내 거절하고 은둔의 세월을 보내다 세상을 뜬다.
『몽유록』은 그가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 시로써 군신간의 아픔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깨어나 그 기록을 적은 것이다. 꿈속에서 원호는 노래를 부른다.
한 맺힌 이가 있어
강물도 목메어 흐르지 못하고
갈대꽃 단풍잎만 찬바람에 떠는구나
여기가 바로 소상강의 언덕인데
달 밝은 밤, 님의 넋은 어느 곳에서
노닐고 계신 것일까
(한인장강열불류 적화풍엽냉 수수
분명인시장사안 월백영령하처유)
단종이 답을 한다.
강물은 울며울며 끝없이 흘러가고
나의 한도 길고 길어 강물 같구나
살아서 귀한 몸이 죽어서는 외로운 넋이 되었네
처음부터 허울좋은 거짓임금이었고
내 나라 신민들은 초나라에 보냈다네
예닐곱 신하와 더불어 의지하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은 어디 강다락에라도 오르면
물결위에 달빛은 내 근심을 더할테고
슬픈 노래 한가락 하늘가 땅에 넘치겠지
여러 신하들이 저마다 시 한수씩을 바친다
이 꿈 이야기를 원호로부터 들은 김시습도 화답한다
만고의 슬픈 뜻을
한 마리 새가 울고 가는구나
찬 연기는 육신묘를 감싸고
가을 풀꽃이 지고 있다
요순의 꾸짖는 소리는 멀고
탕무의 못된 버릇만 날리는구나
소상강에 달은 밝은데
슬픈 죽지가가 들려오는구나
이 녹음이 우거진 화창한 초여름 줄줄이 시를 짓고있을 임금과 신하들을 떠올리며 숙모전 뜰을 내려선다.

<초혼제>
1
오고 있구나
줄레줄레 흰옷의 사람들
대지팡이 짚고 짚신발 절뚝이며
여기 계룡산 문턱에 다다랐구나
망덕사 앞들의 바닷소리를
치마를 두르고 온 박제상의 아내며
만수산의 검은 구름을
삿갓으로 쓰고 온 길재며
청령포의 달빛을
몸에 휘감고 온 김시습이며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구나
2
계룡은 몸을 씻고 또 씻는다
향을 피우고 또 피운다
귀머거리 산들까지 불러모아
축을 읽고 또 읽는다
사람의 천년이야
산의 하루만도 못하다지만
계룡의 하루는 천년보다 더 길다
울음을 다 보냈는가 해도
울음은 또 돌아오고
눈물을 다 흘렸는가 해도
눈물은 다시 넘쳐 온다
어쩌랴 산이 무너져 강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이 삼사의 불길을.
※망덕사=박제상의 아내가 기다리던 곳.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