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북미자유무역지대 가입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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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내년 1월 1일이면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한 지 10년이 된다. NAFTA는 유로화 출범, 중국의 마르크시즘 탈피, 러시아의 급속한 시장경제 개혁과 함께 가장 급진적인 자유 무역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자유무역은 경제교과서가 가르치는 것처럼 과연 빈국인 멕시코를 선진 경제로 탈바꿈시킬 것인가. NAFTA 이후 멕시코는 세계화의 성패와 찬반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지고 있다. 멕시코가 경험한 NAFTA 10년의 빛과 그림자를 집중 조명했다.[편집자]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12월 22일자)는 '멕시코: NAFTA, 할 만한 가치가 있었나'라는 커버스토리에서 멕시코의 NAFTA 가입은 전반적으로 성공작이었다고 평가했다. NAFTA가 발효되자 아시아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에 짓눌리던 미국 기업들이 멕시코로 몰려갔다. 임금 수준이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멕시코에 지난 10년간 몰린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연평균 1백20억달러에 달했다. 요즘 인도를 찾는 FDI의 세배 수준이다. 수출도 연 5백20억달러에서 1천6백10억달러로 세배가 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4% 오른 4천달러선을 웃돌고 있다. 이는 중국의 약 열배 수준이다.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 경제규모가 10년 전 세계 15위에서 9위권으로 성장했다며 "NAFTA는 일자리, 지식과 경험, 그리고 기술이전을 가져다 주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NAFTA는 정치적인 변화도 불러왔다. 시장을 개방한 멕시코인들이 정치 시스템의 개방도 원했기 때문이다. 70년을 장기 집권하던 제도혁명당(PRI)의 일당 독재는 결국 2000년에 무너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NAFTA의 혜택보다 희생이 컸다고 여기는 멕시코인들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NAFTA가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멕시코인이 1993년에는 68%에 달했지만 지금은 45%에 불과하다.

부품을 수입해 조립과정을 거쳐 완제품을 수출하는 마킬라도라 산업은 NAFTA의 붐에 힘입어 5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2000년 1백30만명 고용을 정점으로 지금은 20% 이상 일자리가 줄었다. 불황으로 미국의 수요가 준 데다 현지 공장들이 임금이 더 싼 중국 등지로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조립 라인의 시간당 임금은 1달러47센트인 데 반해 중국은 59센트에 불과하다. 중국은 저임금뿐 아니라 세금혜택과 교육받은 노동인력, 우수한 사회간접자본 등을 발판으로 외국 기업을 적극 유치한 덕분에 올해 멕시코를 제치고 캐나다에 이어 2위의 대미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멕시코가 누려야 할 NAFTA의 과실을 중국이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는 '멕시코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사에서 멕시코의 NAFTA를 실패로 평가하기도 했다. 농업은 제조업보다 고용사정이 더 어렵다. NAFTA로 선진국인 미국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받아 가격경쟁력이 있는 미국 농산물을 후진국인 멕시코 농업이 당해낼 수가 없었다. 93년 이후 1백30만개의 농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자유시장'이 된 이후 미국에서 일하는 멕시코인 불법 노동자는 90년 2백4만명에서 2000년 4백81만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덕분에 이들이 본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올해 1백40억달러로 FDI 예상치(1백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멕시코인이 느끼는 NAFTA의 부정적 측면은 NAFTA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NAFTA로 늘어난 부(富)를 제대로 배분하는 데 실패해 자유무역의 이득을 잠식당했다는 것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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