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사람, 직장 잃으면 아프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실직을 비관한 자살 및 사건 사고가 늘어나면서 실직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직무시 받는 스트레스 보다 더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목표나 목적을 가지고 회사를 그만 두는 자발적인 실직과 기업에서 해고를 당하는 등 비자발적인 실직으로 유형을 나뉘어 볼 때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가 더 해롭기 마련.

얼마 전 유망한 한 벤처기업에서 일하다가 실직한 강 모(37)씨는 “예전에 직장일로 스트레스 받았던 것은 실직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며 “현재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신경질도 많이 내고 두통이 심하고 항상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강 씨는 비자발적인 실직을 당한 경우여서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상태라 볼 수 있다.

강 씨는 “마음을 잡고 또 취업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결여돼 있어 이를 대처하는데 꽤나 힘이 들것 같다”며 “편히 쉬지도 못하고, 현재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말한다.

◇실직 스트레스, 직무 스트레스보다 더해

실제로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실직한 40~50대 구직자 2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직 후 심리 상태에 대해서 많은 실직자들이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57.4%)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의욕 상실과 무기력(38.7%), 직장에 대한 분노감(33.1%) 등의 심리상태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한 신체적 증상으로는 40.6%가 불면증, 소화불량(24.1%), 두통(17.4%), 탈모증세(6.7%) 등이 나타났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스트레스센터) 우종민 교수는 “실직 상태에 이르러서 당사자가 겪는 심리적 변화는 모면심리 → 불안 및 공포 → 분노 및 배신감 → 실직 후 이완감 → 실직 지속에 따른 자포자기의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최근 보도된 실직을 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면역 기능까지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몸의 대표적인 면역세포인 '킬러 세포'의 활동이 직장인들보다 약해진 것인데, 실직으로 생긴 스트레스 호르몬이 '킬러 세포'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실직한 자신에 대해 좌절이 깊어지면서 분노는 점차 자기 자신을 향해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 이렇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어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자발적, 비자발적 실직 '대처법도 다르게'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탁진국 교수가 실직한지 2개월 이내의 실직자를 대상으로 비자발적 실직자 1083명, 자발적 실직자 5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자발적 실직자의 정신건강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직활동 관련변인에서는 구직 강도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탁진국 교수는 “만약 자발적인 실직자의 경우라면, 자신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는 심리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다”며 “이에 반해 비자발적 실직자는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실직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비자발적 실직자의 경우에는 회사에 대한 분노나 배신감이 클 수 있고, 불안 및 우울 등의 정신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의 회사를 그만둔 자발적 실직자에 비해 더 나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재정적인 압박이나 낮은 고용 가능성으로 인해 만족스럽지 못한 직무라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자발적 실직과 비자발적인 실직의 유형에 따라 그 대처법이 다소 틀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물론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이들 유형을 막론하고 갖춰야할 기본적 자세.

자발적 실직의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비자발적 실직자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쌓거나 미래의 계획에 부합되는 학습이나 배움을 통해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 좋다.

재정적인 부담으로 인해 급히 재취업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자발적 실직의 경우, 과거의 상사나 직장에 대한 안 좋은 추억들이 잠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화나 분노의 원인이 되는 생각들을 떨쳐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탁진국 교수는 “ 조용한 곳에 앉아서 명상이나 심상이미지 기법을 통해 자기를 해고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삭히고, 천천히 자신에게 되물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결국 이는 과거에 대한 화풀이를 명상 및 심상 기법을 이용해서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게끔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실직을 했다고 자신이 무능하다거나 운이 없다는 등의 자기 비하는 금물이다”며 “실직한 현재를 받아들이고 다시 도약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실직을 이겨내는 가장 빠른 길이다”고 강조한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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