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에 각별한 애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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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승주(66.사진) 고려대 총장서리는 지난달 17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이민 1.5세인 한국계 조승희(23)씨가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때문이었다. 외무부장관과 주미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통'한 총장은 조씨의 개인 범행이 1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한인 유학생과 200만 교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특히 세계 일류대로 발돋움하기 위해 미국 30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글로벌화를 추진중인 고려대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된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는 18일부터 미국 30개대 총장들에게 직접 e-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고려대가 교환학생을 파견했거나 학술 교류 중인 펜실베니아대.버지니아대.미시간 주립대.웨스트버지니아대 등이었다. 현재 고려대 재학생 300여 명이 이들 대학에서 공부중이다.

한 총장은 "비극적인 사고로 한국 사회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희생자들의 평안한 휴식을 기원하고 부상자와 유가족, 미국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취지의 e-메일을 밤새워 작성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수학 중인 고려대 교환학생들이 당혹해 하고 있다"며 "자매 대학 당국에서 이들 학생들이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동안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30명의 총장에게 일일이 e-메일를 보낸 한 총장은 국제우편으로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외교적 절차'도 밟았다. 답장이 올지 반신반의하던 그에게 지난달 20일부터 희소식이 답지했다. 가장 먼저 답장을 보내온 버지니아대 존 캐스틴 총장은 "(실례를 무릅쓰고) 총장의 서신을 버니지아 공대 찰스 스티커 총장과 함께 읽었다"며 "애도의 말씀에 깊이 감사하며 걱정을 마시라"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했다. 신시내티대 짐페르 총장은 "미국인들은 이번 참사를 한국인 전체에 대한 문제로 일반화시키지 않고 있다"며 "조씨 개인의 잘못일 뿐 한국의 국민성이나 문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펜실베니아대 에이미 거트만 총장도 "한국의 대학 총장이 직접 편지를 보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우리 학교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들을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

한 총장은 "진심을 담은 편지 한 장이 미국 대학 총장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같다"며 "그래서인지 우리 학교가 개설한 올해 서머스쿨에 미국 대학생들이 대거 몰려오는 등 학생 교류가 오히려 튼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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