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 프랑스 대선 대흥행 TV토론 2000만 명이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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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프랑스 전역에서 200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지켜본 대선 후보 토론은 후보자들의 발언 시간을 공정히 배분하기 위해 테이블 앞에 누적 발언 시간을 표시하는 디지털시계를 설치했다. [파리 AP=연합뉴스]

프랑스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얄의 TV 토론이 예정된 2일(현지시간). 방송들은 오전부터 토론회장의 모습과 토론 방식 등을 시시각각 알리느라 분주했다. 양측의 전략에 대한 예측과 전문가들의 예상평도 이어졌다. 흡사 지난해 7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던 날을 연상케 했다. 루아얄의 사진을 붙이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회당 지지자들과, 이에 질세라 사르코지를 연호하는 우파 젊은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리 곳곳에서 '빅매치'를 앞둔 긴장과 기대가 함께 흘렀다.

◆ 토론 보기 위해 서둘러 귀가=오후 9시 거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TV 토론을 지켜보기 위해 사람들이 귀가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이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은 시민들은 시내 카페에 앉아 후보들의 토론에 귀를 기울였다. 카페 손님은 물론 길 가던 사람들도 스크린 앞에 서서 생방송을 지켜봤다. 이날 유권자의 절반 가까운 2000만 명이 TV 토론을 지켜봤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요즘 파리의 길거리에는 '사랑해요 사르코지' '세골렌 대통령' 등의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전에는 선거운동원들이나 했던 일이지만 요즘 프랑스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장미꽃 물결도 새로운 풍경이다. 사회당 지지자들이 파리를 사회당의 상징인 붉은 장미로 뒤덮고 있는 것이다. 꽃집 체인인 몽소플뢰르 관계자는 "1차 투표가 끝난 뒤부터 매일같이 장미꽃은 아침에 동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한물간 스포츠로 치부되던 '정치'가 다시 인기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유난히 흥미진진해서다.

우선 성 대결이다. 여성이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일 저녁 친구들과 TV 토론을 지켜본 대학생 레지스 르뱅게(27)는 "우아해 보이는 여성 후보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성 후보의 대결이 얼마나 재미있느냐"고 되묻는다. 12년 만에 돌아온 좌우 대결도 관심을 더해준다. 전통적으로 좌파가 강한 프랑스에서 2002년 극우파 대 우파의 대결은 싱거운 게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좌우 대결의 양상이 강하고 계층 간 표 갈림 현상도 뚜렷하다. 1차 투표에서 두 후보를 지지하는 계층이 지역별로 명확히 나뉘었다. 부유층이 사는 파리의 7.16구 등에서는 사르코지가 우세했고, 비교적 저소득층이 많은 18~20구에서는 루아얄이 큰 표 차로 앞섰다.

◆ 감성과 논리의 대결=TV 토론은 이번 선거전의 하이라이트였다. 과거에도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던 데다 박빙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옷차림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검은색 투피스에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입은 루아얄은 여느 때보다 훨씬 우아하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특유의 부드러움을 강조하면서도 이지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평소 흰색 와이셔츠를 즐겨 입는 사르코지는 이날은 엷은 회색 셔츠를 입었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전략인 듯 보였다.

토론은 예상했던 대로 감성과 논리의 싸움으로 전개됐다. 사르코지가 공공부채 감축을 위해 정부 축소 등 공약을 열거하자 루아얄은 기다렸다는 듯 특유의 감성화법을 선보였다. 그는 최근 파리 근교에서 발생한 여성 경찰관 성폭행 사건을 거론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부족해 이런 지경까지 왔는데 고작 공무원을 줄이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느냐는 취지였다. 루아얄은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 경찰관이 밤에 집에 돌아갈 때 동행하는 동료가 있었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겠느냐"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릴 만한 호소력이 배어 있었다.

사르코지는 주 35시간 노동제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근로 시간을 조금만 늘린다면 월급도 훨씬 오르고, 기업 해외 이전을 막을 수 있어 실업률도 줄일 수 있다며 머리에 호소했다. 반면 루아얄은 노동자의 삶의 질 문제를 간호사 등 특정 직업의 예를 들어가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사르코지는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토론 중간 중간 부드러운 말투로 "마담 루아얄" 하고 부르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반면 루아얄은 다소 거칠게 나왔다. 사르코지의 말을 자주 끊었고 비꼬는 듯한 말투도 여러 차례 던졌다. 사르코지를 자극해 그의 매너 없는 태도를 이끌어 내보이겠다는 계산인 듯했다. 논리와 숫자로 무장하고 나온 사르코지에게 초반에 다소 밀렸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공격적인 질문 등을 던지며 점수를 만회했다는 평가다. 현지 언론은 두 후보가 엇비슷한 점수를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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